반도체 경기가 예상과는 달리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난 상반기에 작년 상반기의 3분의2에도 미치지 못하는 42억달러의 수출(일관가공 기준)에 그쳤던 삼성, LG, 현대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생산5사는 올 중반 이후 D램 가격 하락속도가 완만해지고 대용량 메모리를 요구하는 펜티엄 이상 고성능 PC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하기휴가 시즌이 끝나는 9월부터는 경기가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보고 하반기 수출목표를 연초 계획보다 10% 가량 늘어난 63억달러로 상향 조정했었다.
그러나 막상 9월이 다 지나가도록 16MD램 가격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믿었던 64MD램까지 가격이 조기에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는 하반기 반도체 수출도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반도체 3사 마케팅 관계자들도 최근 모임에서 16/64MD램의 가격이 당초 예상보다 10∼15% 이상 낮은 선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수요를 촉발할 것으로 기대됐던 호재들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하반기 수출은 55억달러에 그치고 올해 전체로도 당초 예상보다 10% 정도 미달된 97∼99억달러에 머무를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이보다 큰 문제는 대만의 대대적인 가세와 미국의 마이크론, TI 등의 증산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D램시장이 점차 구매자 위주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고 제품 자체도 과거와 달리 복잡다양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64MD램의 경우는 우선 제품 규격이 16MD램 때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는데다 전에는 없었던 경쟁제품들도 적지 않게 등장해 시장주도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래픽 지원용 등 차세대 고속 64MD램에서 소위 「램버스D램」이라고 불리는 진영과 기존 D램의 특성을 개선한 싱크로너스 D램 진영이 세계 PC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및 칩세트 업체들과 연계해 표준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동안에는 선발 외국업체들이 닦아놓은 길을 부지런히 달리기만 하면 됐던 국내 D램업체들이 이제는 수요업체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처럼 한 제품에 집중투자해 물량과 가격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앞으로는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D램 수급전망도 불투명하는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들의 내년도 세계 64MD램 수요 예측을 보더라도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2억7천만개로 보는 반면 데이터퀘스트는 3억8천만개, 또다른 D램 전문조사기관은 5억개 이상으로 각각 전망하는 등 많게는 2배 정도의 편차가 날 정도다. 게다가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는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가격불문하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 대만업체들의 존재는 향후 D램 시장의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업체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 유관업체들과 이해집단을 결성해 세를 확장하는 노력과 이를 위해 각종 국제적인 표준화작업이나 반도체 관련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입지를 높이고 정보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아울러 국내 세트업계나 주변기기, 보드 등 유관업체들과의 협조를 통해 내수를 확대하는 노력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디지털통신 부문에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국내 관련시장이 세계적인 수요시장이 됨은 물론 관련 국내 전후방 업체들도 호황을 나누고 있는 것은 그동안 생산과 판매 등 독자적인 행보에 치중해온 우리 반도체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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