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은 매춘의 역사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직업이라는창녀의 삶처럼 영화도 산만하고 낡은 감상주의로 관객을 지치도록 몰아간다. 신은경의 농염한변신이 개봉전 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 「창」은 관객들에게 「오염된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범자」로서의 죄의식을 느껴주길 강요하지만 감독의 전작들에서 보여지는 「한(恨)의 정서」가힘을 잃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를 지나온 사창가 골목의 역사를 통해 그는정치적 이슈부터 「빨간마후라」의 청소년 음란 비디오 문제까지 너무나 많은 얘기를 흘리며 관객을 혼란 속에빠트린다.감독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났지만 사창가의 방들엔 피폐한 삶의 단면으로 표출되는 배설물만 가득할 뿐이다.
술집인 줄 알고 사창가로 들어온 열 일곱 살의 영은. 업주로부터 20살짜리의 가짜 주민등록증을 받아 쥐면서 그녀는 20여년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몸뚱이 하나로 버텨내야 하는 삶을 시작한다. 한때는 잘 팔리는 인생을 살기도 하지만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옷을 벗어야했던그녀에게 쌓이는 건 빚뿐이다. 때로 그녀의 삶을 구원해 줄 것 같았던 남자들이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영은에게 안락한 가정이란 어릴 때 떠나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향처럼 멀기만하다. 그런 영은에게도 안식처는 있다.처음 만난 창녀 영은에게 순정을 바치는 길룡(한정현분).
그는 오토바이를 몰고 영은을 뒤에 태운 채 틈이 날 때마다 그녀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영은을 나락에서 구해낼 만큼 돈이 많지도, 강한 남자도 아니지만 길룡은 늘 영은의 주위를맴돌며 그녀의 고통을 아파하고 위로해 준다. 세월이 흘러 창녀로서도 퇴기가 되어버린 영은은 길룡과 함께 마침내 고향 땅을 발견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고향 역시 그녀의 안식처는 아니다.
자칫 「눈요기거리」만 풍성해지기 쉬운 영화적 소재와 「거장」이라는 명성의 무게감 탓인지만들기가 쉽지만은 않았음이 느껴진다. 화제가 된 신은경의 베드신도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서느껴지는 미학적 장치나 편집의 속임수없이 정직하고 사실적이다. 이런 것이 그의 영화를 깊이 있는 무게감으로 대하게 되는 요인이다.
그러나 사창가를 더러움과 타락의 습지로 규정짓고 길룡이라는 순수의 상징을 통해 「구원의메시지」 를 제시하는 것은 「임권택식 낭만주의」다. 더이상 관객들이 이러한 낭만주의에 길들여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구 때문인가.감독의 표현대로라면 탁류를 더욱 탁류이게 만드는 이 시대적 상황과 그 사회를 지탱해 가는 우리들 때문일 것이다.
<엄용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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