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美 인터넷업계, 「웹 등급제」 실시 주장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폭력, 외설 자료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된 이른바 통신품위법(CDA)이 미 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미 정부를 비롯한 각계에서 이의 보완책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CDA에 반대해온 인터넷업계가 최근 「인터넷 등급제」를 들고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6월 미 대법원의 CDA 위헌판결은 「표현의 자유 보장」을 강조해온 네티즌들을 비롯, 컴퓨터업계, 미디어업계, 시민단체 등 CDA 반대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업계가 「등급제는 현 단계에서 미성년자들을 보호하면서 표현의 자유도 지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들은 막상 CDA가 위헌판결을 받게 되자 고민에 빠졌다고 밝힌 바 있다. CDA가 인터넷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데는 다른 시민단체, 미디어업계와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CDA에 대한 더 이상의 반대는 인터넷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업계는 등급제가 인터넷 발전방법으로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는 인터넷에서 외설, 폭력 자료가 범람하는 현실을 인정했다는 측면도 포함돼 있었다.

그동안 미 정부를 비롯한 CDA 지지론자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CDA가 위헌이라는 오욕을 둘러메고 쟁점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판결 직후 인터넷 관련업계 관계자들과 서둘러 만나 이들로부터 인터넷을 소프트웨어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자리에 동참한 인터넷업체들로서도 인터넷의 활성화가 시급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급적 많은 사이트가 활성화돼야 했다.

따라서 소비자들로부터 유해성이 높다는 지탄을 줄이면서 동시에 인터넷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이트의 등급을 정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업계는 이 방법만이 미성년자들의 출입을 금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업체들이 미 정부와 의회, 학부모 등 소비자단체, 미성년자 보호론자들의 편에 서게 되자 인터넷을 둘러싸고 전개됐던 대립의 구도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표현자유론자들이 구체적인 CDA 판결 보완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표현자유를 강경하게 주장해온 사람들만 인터넷에서 어떤 종류의 통제든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완강히 부정했다. 이들은 매사추세츠공대에서 개발한 인터넷 등급 및 검열 언어인 PICS(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는 물론 레크리에이션 소프트웨어 이사회의 등급체계인 RSACi도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인터넷업체들은 검열이 정보의 차단을 의미하는 데 반해 등급제는 인터넷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검열은 무조건적 차단이지만 등급제는 성인들의 볼 권리를 그대로 충족시켜 주면서 미성년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업계는 무엇보다 영화업계의 등급제 성공에 고무돼 있었다.

물론 등급제의 실현에 따른 어려움도 있었다. 미성년자들을 보호하는 한편 정부의 규제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인터넷 업체 및 단체들이 등급제 적용과 동시에 사이트에 대해 정확하게 등급을 매겨야 한다. 또한 미성년자들과 성인들을 분명히 구별함으로써 성인들의 볼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은 TV나 영화와는 다르므로 등급제도 결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웹 등급체계는 인터넷에서는 더욱 부적절하다고 밝힌다.

CDA의 퇴장으로 인터넷업계는 그동안의 검열 철폐 주장에서 한 발 양보, 인터넷 등급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지작업에 본격 나섰다. 업계 안팎에서는 인터넷 업계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인터넷에서 미성년자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상호 배치되는 미덕을 실현하는 작업이 당분간은 멀고도 험난한 것이라는 사실만 입증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행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허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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