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월드] 사이버 팍스아메리카나 실현되나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도 마침내 「슈퍼 파워」가 등장했다.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소련을 제치고 지구상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이 21세기 사이버 공간을 주도하는 인터넷에서까지 「슈퍼 파워국」의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해 맹렬히 뛰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경과 통제가 전혀 없는 「열린 공간」인 인터넷의 기본 정신을 흔드는 이같은 일방적인 미국 주도를 「사이버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구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나 유럽은 물론 한국까지 사이버 공간의 변방국가로 밀려나거나 제3세계권에 편입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미국의 사이버 패권주의 시비는 미국 행정부와 대법원이 대표한다. 둘 다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있을 수 없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지구촌 전자상거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간단하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자유화하고 인터넷을 무관세 지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국제규범을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협의해 2년 안에 준비, 오는 2000년부터 시행하자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달 「연방통신 품위법」이 언론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최종 위헌판결을 내렸다. 클린턴 행정부가 어린이들의 음란물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한 「연방통신 품위법」에 대해 새로운 통신매체인 인터넷은 기존 활자매체와 마찬가지로 언론자유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룰」이 없어 혼란을 야기하는 인터넷 공간의 규칙을 미국이 앞장서 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가상공간에서조차 자국의 이해를 우선하는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여타 국가에까지 수용하라며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웹 사이트의 80% 이상이 미국에서 제작된 것이다. 사용언어도 영어이고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한 웹 브라우저에서부터 검색엔진, 각종 활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도 미국제 일색이다. 그대로 내버려둬도 인터넷은 미국이 종주국인 형편이다.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 규모는 올해 기준 20억달러 수준. 물품거래 중심이기 때문에 성행하고 있는 음란 사이트 시장규모까지 합치면 훨씬 커진다. 오는 2000년에는 60억달러를 가볍게 넘어설 전망이다. 그 10배인 2백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이 시장에서는 역시 미국이 압도적인 강세다. 사이트 수도 많지만 돈이 되는 부분에 대한 경쟁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영화 음악 컨설팅 의료 및 교육서비스 등 미국이 우선 추진하고 있는 비관세분야를 비롯, 대부분의 콘텐트를 미국업계가 쥐고 있다.

이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는 최근 대통령보좌관, 상무부 고위관리를 동원해 영국 프랑스 독일에 이어 이번주 초 서울에 들어와 한국정부와 업계를 대상으로 인터넷 무관세 압력을 넣고 있다. 이들은 일본과 싱가포르 등도 방문, 미국의 「지구촌 상거래 기본계획」을 설명하고 동참을 유도할 계획이다.

인터넷은 미국이 전세계 어떤 국가를 대상으로 하건 모조리 무역 흑자를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다. 또 미국정부는 남들에게는 무관세 거래를 강권하면서 인터넷 거래의 핵심인 암호기술은 수출규제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철저히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음란물과 관련해서는 미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현지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역시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독일에서는 이달 초 인터넷 음란물 규제는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상반된 입장을 보였지만 대다수 사이트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인터넷 접속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에 이어 사이버 공간에서까지 슈퍼 파워가 되려는 미국의 야심은 거칠 것이 없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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