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회] 비메모리산업 현주소

국내 비메모리분야에 대한 업계의 투자규모나 관련당국의 지원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국내 비메모리산업은 올해 사실상 원년을 맞고 있는 셈이다.

본지는 이를 계기로 지난 한달간 「비메모리산업의 현주소」라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국내 비메모리산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기획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제기된 국내 시스템IC산업의 각종 현안들을 정부 및 업계, 그리고 학계 및 연구기관 대표 8명을 초청, 일선 전문가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이를 통해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와 업계, 중소업체와 대기업, 그리고 학계 및 연구기관들간의 역할분담 등을 집중 모색해 본다.

<편집자>

참석자:박영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사회), 김치락 한국반도체협회 부회장, 전경석 통산산업부 전자부품과 서기관, 최민성 LG반도체 기술연구소장, 김상욱 삼성전자 시스템LSI본부 이사, 김용도 LSI로직코리아 사장, 서승모 C&S테크놀로지 사장, 주대영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영준(사회):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알고 지내던 전문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이번 좌담회는 국내 비모메리산업의 현실과 발전방안을 논의해 보는 자리로 그 주제 특성상 세부적인 토론안건을 선정하는 것보다는 국내 비메모리산업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그 육성방안 등 두가지 주제를 놓고 브레인 스토밍식의 자유로운 토론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토론에 앞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메모리」라는 용어는 가능한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메모리와 로직이 하나로 합쳐가는 지금의 추세로 볼 때 비메모리라는 말보다는 「시스템IC」나 「시스템LSI」, 그리고 「시스템반도체」와 같은 새로운 용어들이 훨씬 적합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럼 지금부터 국내 시스템IC산업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먼저 논의해 보기로 하죠. 실제로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서승모 사장의 경우 이런 점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

서승모:국내 시스템IC산업의 문제점이라면 며칠을 두고 애기해도 모자랄 정도죠. 하지만 요점만 말하면 시스템에 들어갈 핵심 칩을 만드는 일은 그 시스템의 프로토콜, 아키텍처, 운용체계 등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기술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기반기술이 거의 없다보니 칩부터 만들고 이를 거꾸로 시스템 영역으로까지 역추적해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는 거죠.

김용도:저는 국내 시스템IC산업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다. 세계 반도체 수요의 34%인 메모리시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여기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확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빠른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메모리를 집중 육성한 것이지 결코 시스템IC를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전경석:저도 그 시각에 동의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시스템IC산업의 중요성만큼은 과거부터 충분히 인식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메모리가 아닌 시스템IC에 치중했다면 지금의 메모리분야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국내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볼 때 집중투자와 대량생산이 용이한 메모리 육성전략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영준:메모리에 대한 과거의 투자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시스템IC분야는 완전 논외였고 그 결과 이 영역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가 전혀 축적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대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칩 제작과 직결되는 보드 레벨 수준의 시스템 설계기술에 대한 교육과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 대기업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김상욱:우리의 경우 그동안 파워소자나 마이컴과 같은 표준형 제품 개발에 나름대로 중점해왔지만 그 기술축적이나 상품화 측면에서는 그리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메모리와 로직이 하나가 되는 시스템 온 칩화 추세의 현재 기술상황에서 각종 ASIC 셀과 아날로그, 또는 MPEG 등과 같은 메모리 이외의 분야에 구멍이 생겼고 이러한 단점이 메모리를 포함한 국내 전체 반도체산업의 향후 발전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민성:문제는 시스템IC산업을 발전시킬 만한 사회 전체적 인프라가 전혀 국축돼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대량생산 형태의 메모리 제품과는 달리 시스템IC는 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각종 애플리케이션 및 시장수요를 스스로 창출해가야 합니다. 따라서 하드웨어 및 소프웨어분야 각종 코어기술의 확보와 함께 개인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마케팅 능력, 그리고 특화된 전문성이 필수적인데 지금 상황으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형편입니다.

박영준:국내 시스템IC산업의 전체적인 인프라 수준이 대체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러한 국내 시스템IC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들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죠.

김치락:시스템IC산업이 활성되려면 무엇보다 국내 시스템 업체들의 선도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IC의 실수요자가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죠. 결국 국내 시스템 업체들이 자체 연구인력이나 디자인 하우스 등의 중소 AISC 전문업체를 통해 필요한 칩을 하나둘씩 개발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아남, 대우, 한국전자, 광전자와 같은 메모리 이외 분야의 전문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서도 계속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영준:시스템 중심, 또는 세트산업 우선의 시스템IC산업 육성전략은 다소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점에 대해 C&S테크놀로지의 서승모 사장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서승모:제가 운영하는 회사 이름 앞에 굳이 「칩스 앤 시스템」의 약어인 C&S를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칩을 만드는 데 있어 전체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기술확보는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추세로 볼 때 시스템과 칩을 서로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특정영역에 대한 종합 솔루션 전체를 국산화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필요한 각종 코어기술을 하나하나씩 개발해 나가는 일이 곧 전체 시스템IC산업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첨단 분야별 요소기술을 연구하거나 개발하는 전문 벤처기업이 필요하며 이런 업체들에 대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며 적극 지원해 주는 정책적 배려가 아쉽습니다.

주대영:다품종 소량생산의 특성을 지닌 시스템IC분야만큼은 중소 벤처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런 점에서 외국 벤처자본들의 경우 「석유 시추」 수준으로까지 비유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도 이러한 벤처업체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내 대기업들 또한 시스템IC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가령 세계 CPU시장에서 최근 인텔과 경쟁하고 있는 업체들의 경우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양산능력을 보유한 새로운 파트너 업체를 물색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과의 제휴를 통한 시스템IC시장 진출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해외 우수 반도체 인력들에 대한 실질적인 활용방안도 강구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용도:저도 시스템IC분야에서 벤처기업의 중요성만큼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국산화만 추진한다고 해서 벤처기업이라 부르고 이를 적극 지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최소한 개발하는 아이템이 첨단 기술동향에 부합되고 이 제품이 세계표준에 도전할 만한 것인가는 반드시 따져봐야 할 항목입니다. 특히 시스템IC분야의 경우 개발되는 제품이 세계 무대에 내놓을 수준이 안된다면 그 상용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시스템IC의 경우 관련 기술범위가 워낙 넓으므로 각각의 전문 분야별로 나뉘어 지원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프로세스 기술, ASIC 설계, 시스템 아키텍처, 마케팅 전략, 애플리케이션의 지원 등 각 전문 분야별 기술인프라의 구축이 하루 빨리 추진돼야 합니다.

박영준:광범위한 적용영역과 고도의 전문화가 요구되는 시스템IC산업 특성상 벤처형태의 개미군단 육성과 기업들의 특화전략이 절실하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한 대기업의 시각은 어떤지요.

김상욱:시스템IC 분야에서 만큼은 대기업의 입장도 벤처기업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결국 똑같이 출발선 상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래된 메모리 양산라인을 시스템IC쪽으로 전환한다든가 기존 설계인력을 이 분야에 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별 효과도 없을 뿐더러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런 점에서 향후 대기업의 시스템IC 신규 투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입니다. 실제로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해외 인력을 채용하거나 국내 중소업체를 지원할 때 해외 투자 제한 또는 문어발식 확장 비난 등 예상밖의 걸림돌이 의외로 많습니다.

최민성:대기업과 중소업체간의 유기적인 역할분담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소업체는 ASIC을, 그리고 대기업은 표준형 ASSP 제품을 하자는 식의 획일적인 역할규정보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공동인식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간에 국내 시스템IC산업을 단기간에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창조적 능력과 유연성이 강조되는 시스템IC 분야의 발전은 이러한 특성 자체를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사회 전체적 분위기가 조성될 때만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는 획일적인 정책과 시장전략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박영준:하지만 그동안 가장 참을성이 부족한 쪽은 대기업이였지 않나 싶습니다. 당장 큰 매출을 올려야 하는 대기업의 입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핵심 칩 등 기반기술 개발에 대해 투자도 이젠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전경석:향후 시스템IC에 대한 정부 지원 입장도 그동안의 메모리산업 지원 방식과는 많이 달라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량생산을 이끄는 기존의 지원형태가 아니라 다양성과 유연성이 강조되는 시스템IC의 특성에 부합되는 장기적이면도 통합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이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 벤처업체들간의 자율적인 역할분담과 유기적인 연결체제 확립을 적극 유도해 나갈 방침입니다.

박영준:결론적으로 시스템IC산업의 경우 그 응용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술인프라를 요구하는 관계로 개별기술의 단편적인 개발책보다는 종합 솔루션적인 측면의 새로운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있어왔던 시스템IC산업에 대한 논의들의 대부분이 특정 아이템의 개발전략 수준이였음을 감안할 때 오늘 이 좌담회는 종합 솔루션적인 측면에서 국내 시스템IC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깊은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시스템IC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오늘과 같은 자리가 더욱 자주 마련됐으면 합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정리: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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