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위선의 태양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니키타 미할코프는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감독이다. 그의 <위선의 태양>은 193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가 실제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스탈린이 그의 정적을 어떻게 처치했는에 대한 음울한 탐색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서정성, 영혼을 사로잡는 음악, 인물들의뛰어난 연기력,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영화의 격조를 높히고 있는 <위선의 태양>은 러시아 영화에 대한 우리들의이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위선의 태양>은 스탈린과 함께 전선에서 젊음을 보냈던 혁명 영웅 세르게이(니키타 미할코프 분)의 만년을 다루고 있다. 그는 딸처럼 보이는젊은 아내와 손녀처럼 보이는 어린 딸과 함께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아내와 친지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으며 따라서 그는 행복했다. 적어도 드미트리(올레그 멘치코프)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드미트리는 세르게이의 아내인 미로샤의 옛 애인이었다. 이러한 드미트리가 나타나자 시골의한가함은 갑작스럽게 깨진다. 폭풍이 오기 직전의 긴장감 같은 것이 한동안 계속되는데, 이러한 긴장감은 올레그 멘치코프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 연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드미트리가 비밀경찰임이 밝혀진 뒤에도 관객은 이 인물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여전히고민해야 하는 이상한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드미트리는 나디아에게 들려주는 우화를 통해 세르게이에 대한 자신의 반감을 표현한다. 이영화의 제목에 나오는 「태양」이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이다. 태양은 단속적으로나타났다 사라진다. 쉭쉭 소리를내며 집안을 가로지르는 이 태양은 마침내 세르게이의 사진이 끼워져 있는액자를 깨뜨리고 마침내는 숲 속 깊숙히 날아가 무엇엔가에 부딪쳐 터져버린다.바로 이때 떠오르기 시작하는 대형 스탈린의 초상화는 이 태양이무엇을 상징하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태양은 바로 스탈린이었다. 『지친 태양이 외로운 바다 너머 사라지니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그 말』로 시작하는 영화 주제가에서의 태양도 사실은 스탈린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스탈린이 자신과 함께 혁명과업을 완수했던 전우들을 어떻게 제거했는지를 잘 보여주고있다.혁명 영웅세르게이는 비밀 경찰 네 명이 타 있는 리무진 뒷좌석 가운데에 끼여 앉혀진채 무참하게 구타당한 뒤 살해당한 것이다. 재판도 없이.

<위선의 태양>은 러시아 특유의 진한 서정성이 잘 표현되어 있는 영화다. 끝까지 스탈린을 믿고 그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사태는 원점으로돌아가리라 생각했던 세르게이의 소박한 믿음이 무참하게 배신당할 때 관객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진한 페이소스다. 올레그 멘치코프와 감독이기도 한 니키타 미할코프의 연기가 대조되면서 서로 돋보인다. 감독의 딸인 나디아 미할코프의 깜찍함이 못내 지워지지 않는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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