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유럽 정보화 행보 빨라진다

유럽기업들의 정보화를 향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기업의 전자우편 이용에서부터 직원들의 PC이용률, 인트라넷 구축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정보기술(IT) 및 네트워크화에서 미국과 큰 격차를 보여온 유럽이 서서히 정보화의 급류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IT분야에 대한 투자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 낮은 정보기술수준은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많은 우려와 불안감을 안겨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포럼에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유력한 하이테크업체들도 유럽이 새로운 정보기술을 수용하지 못해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우려와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리 절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최근 각 산업분야에서 규제철폐 등 경쟁체제로의 이행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생산체제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기업들이 정보기술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어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러한 투자는 특히 영국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정부의 규제철폐로 시장개방이 급진전하고 있는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투자규모 등에서도 미국과도 그다지 큰 격차가 없다.

미국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가 시장조사업체인 IDC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국과 스웨덴기업의 82% 이상이, 독일기업의 67%가, 프랑스기업의 절반 정도가 앞으로 1년 내에 인트라넷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어 그 열의를 짐작케 한다.

정보기술에 큰 돈을 쏟아붓고 있는 기업들은 주로 통신, 자동차, 은행, 보험분야다.

스웨덴의 볼보는 최근 자사 네트워크 관리를 위한 합작사 설립과 관련해 IBM과 컴퓨터 사이언스社에 사업계획안을 의뢰했다. 이 네트워크 관리업체는 볼보 생산라인에 필요한 정보시스템의 개발은 물론이고 부품협력업체와 전세계 판매법인간을 연결하는 고속 네트워크의 구축과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지의 기업들도 최근 1, 2년새 통신인프라가 급진전함에 따라 이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회사인 BMW도 자사와 협력업체를 직접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과 새로운 모델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거액을 들여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와 관련, BMW의 연구개발부서는 시뮬레이션 시스템의 도입으로 앞으로 3∼5년 안에 신차개발 기간을 50% 정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프랑스의 철강업체인 우지노 사실로社도 전자우편 시스템과 전세계 주문시스템의 도입으로 기존에 보름 정도 걸리던 업무처리가 불과 24시간으로 단축됐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이 업체는 경쟁업체보다 신속하고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업 인트라넷을 자동차회사들과 연결, 자동차 조립에 필요한 철강을 수시간 내에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의 타이어업체인 피렐리도 네트워크 구축 등 정보기술에 적극 투자하기는 마찬가지. 이 회사는 지난 93년 이래 전세계 지사를 연결하는 첨단 정보시스템 구축에 해마다 총매출의 1.4%에 이르는 1억달러를 투자해 왔다. 그 결과 세계 어느 지역에 있는 법인에서도 주문현황이나 재고, 심지어 수익까지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타이어 딜러들과도 네트워크를 구축, 딜러들이 피렐리의 인트라넷에 접속해 모델이나 가격에 관한 최신 정보를 받아 보고 온라인 주문을 낼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이미 피렐리의 인터넷 웹사이트는 한달에 40만건 정도의 방문건수를 기록하면서 북유럽지역의 타이어 주문량 중 5% 정도는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있다.

정보화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기는 소매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많은 소매업체들이 정보기술분야로 관심을 돌리면서 인터넷은 이들 업체에 중요한 마케팅 채널이 되고 있다.

스위스 네슬레社의 경우 15종의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의류업체인 구치도 사내 인트라넷을 구축하는 한편 이를 협력업체와도 연결, 원단이나 자재 등의 수급을 원활히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기업들의 정보화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정보화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경영진의 마인드.

이들 경영진은 정보(데이터)를 기업의 전체적인 경쟁력 도구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경쟁력의 원천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전자우편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회사전체나 다른 지역 법인들과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이의 이용을 경영진에 국한시킴으로써 전체 직원과 협력업체, 고객들의 정보흐름을 제한시킨 점이 그것이다.

따라서 전체 워크그룹들이 정보자원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무튼 IBM의 자료에 의하면 아직 유럽의 기업들은 한해 정보기술부문의 투자가 직원당 1천달러 내외로 미국의 2천달러나 일본의 1천7백여달러보다 여전히 낮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보화에 대한 열기대로라면 앞으로 2, 3년 내 정보기술부문에서의 유럽의 경쟁력은 미국이 자신들을 추격하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까지 강해질지 모른다.

<구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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