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현실론에 입각한 초고속정보망

한보사태로 전국이 시끄러운 가운데 최근 정보통신과 관련된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초고속정보망 2015년 구축」이라는 제하로 오는 2015년까지 가정과 산업체를 잇는 모든 통신망을 광케이블로 기간화하고 필요한 국가망과 공중망을 올해부터 구축해 내년에는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벌일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오랜 만에 듣는 정부의 반가운 발표였다. 그 이유는 초고속정보망 구축의 중요함과 어려움을 고려할 때 적어도 이 정도의 장기계획에 따라 실현 가능성을 짚어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보통신과 관련된 정부의 발전계획들을 살펴보면 너무 서둘러서 단기과제로 처리해 버리는 인상을 받아 왔다. 몇해만 거슬러 올라가 이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내용을 발췌하여 분석해 보면 당장 드러난다. 굵직한 정부 계획에 관한 기사가 요란하게, 그리고 빈번히 발표된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실현 불가능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게 진행시킬 것을 공약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통신정책은 신중히 숙고하여 실현 가능한 결정사항을 발표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산업적 대응과 사회적 적응이 마련될 여지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속정책이 혼선을 빚게 되고 인력과 시간의 낭비가 뒤따르며 부수적인 산업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초고속정보망 구축에 대한 사안이 정부 차원에서 부각되었던 것이 2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각 부처 장관들이 주축이 되어 해당 부서마다 초고속정보망의 실천방안을 분석하여 신속히 추진할 것을 지시했던 중요한 정부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 차원의 시도도 잠깐 두각을 나타냈을 뿐 며칠이 지나자 잊혀진 정책사항으로 사장되어 버렸다. 당시 미국 정부에서 정보기간화를 강화하는 일환으로 초고속 정보망이 상징적으로 부각되자 우리 정부도 서둘러 관심을 집결시켜보려 했으나 결론은 뚜렷한 결실없이 상징적인 모임과 논의에 그쳐버린 셈이다.

물론 그뒤로 정보통신부가 주관하여 꾸준히 초고속정보망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각에서 가시화된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의 여건에서 미국이 부르짖는 초고속정보망의 개념을 그대로 답습하여 검토한 것도 무리였다.

정보기술은 단순히 후발의 이점을 살리기에는 너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도 튼튼한 정보 기간화가 어느 정도 정립된 기술적 누적이 쌓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기기가 조직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절대 다수의 범위 내에서 확산된 이후에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는 고급 기술체계가 초고속정보망의 구축이다. 단순히 디지털방식의 전송망 체제라든지 각종 미디어 시스템을 종합시키는 광대역 네트워크라는 식의 사변적 이해는 금물이다.

기존의 정보전송망을 타진해야 하고 교체하거나 신축해야 할 전송체계를 검토하며 신뢰도가 높고 빠른 정보를 유통시키는 최종 정보단말기의 효율성을 측정하기까지 아직도 무수한 연구개발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겨우 중간 보고서 수준의 결과를 조심스러이 발표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수준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사회적 정보수용의 범위와 핵심기술들이 우리의 초고속정보망 추진을 사업적으로 주시하는 눈길도 경계해야 한다. 한마디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데 우리는 너무 쉽게 결정적인 정책사항을 공식 발표하는 경향이 짙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발표 이후에 아무런 결과에 대한 보고가 없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우리의 여건과 수준에 맞는 정책이 입안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실행과 실천이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를 알리는 중간 보고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정책학자 스티브 밀러는 초고속정보망을 구축하려는 국가의 의도를 정직히 밝히고, 초고속정보망 구축에 개입되는 「범용서비스」(Universal Service)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충분히 설정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추진 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현실론에 입각해서 초고속정보망의 의미를 다시금 분명히 하고 좀더 장기적인 계획하에 실현 가능한 추진방안부터 제시하는 것이 옳다. 그런 알뜰한 정책과정이 서술된 언론보도를 접하고 싶을 뿐이다.

<田錫昊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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