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기술혁신과 창의적 모방

기술이 별로 변하지 않는 성숙기 산업에서는 외국제품의 단순한 모방으로도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이 변하는 성장기 산업에서는 기술능력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외국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창의적으로 모방(Creative Imitation)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아직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개척(Pioneering)에 성공하든가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러나 기업경영 측면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새로운 제품개척보다는 창의적 모방이 더 현명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미국기업들이 새로운 제품개척에 주력해 온 데 비해 일본기업들은 주로 창의적 모방에 주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트랜지스터를 제일 먼저 개발한 것은 미국이었지만 이를 가전제품에 응용해 세계시장을 석권한 것은 일본 기업이었으며, VCR를 제일 먼저 개발해 상품화한 것은 미국기업이었지만 이를 창의적으로 모방해 훨씬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시장에 공급해 성공한 것은 일본 기업이었다. 휴대형 계산기를 제일 먼저 개발한 것은 미국과 영국의 기업이었지만, 이를 경량화하고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면서 가격파괴를 했던 것도 일본 기업들이었다.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그동안 새로운 제품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개척적 혁신기업(Pioneer)의 전략적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창의적 모방의 중요성을 간과해 왔다. 그러나 제약산업과 같이 특허가 중요하고 개발기간이 상당히 장기간인 경우에도 특허받은 제품의 60%는 4년 이내에 창의적으로 모방되며, 특허로 인한 모방기업의 추가 연구개발비용은 평균 11%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미국기업들의 개척적 혁신능력과 전략은 그들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 기업들로부터 배우는 데 소홀한 그들의 학습스타일(Not-Invented-Here Syndrome)은 그들 기업이 가진 가장 심각한 약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와서야 미국에서도 창의적 모방이 개척적 기술혁신보다도 유리한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게 됐다. 창의적 모방기업들은 개척적 기업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적은 규모의 연구개발투자로도 제품개발이 가능하며, 개척적 기업이 신제품의 유용성과 이점을 사용자들에게 교육시키는 데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데 비해, 창의적 모방기업들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된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비용절감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많은 경우 창의적 모방제품이 처음 소개된 혁신제품보다 성능면에서 월등히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산업의 표준을 설정하는 데 차라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은행의 자동현금지급기, 대형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의 운용체계, 전화자동응답기, 비디오게임 등의 경우가 창의적 모방기업에 의해 개척적 혁신기업이 시장에서 몰려난 경우다.

그러나 창의적 모방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과 연구개발 활동이 수반돼야 한다. 그동안의 연구를 보면 개척적 혁신제품이 아이디어 창출에서부터 제품의 시장 출시까지 약 3년이 걸리지만 그 기술적 비밀이 대개의 경우 1년 내지 1년반도 지나지 않아 창의적 모방기업에 의해 감지되며, 20%의 경우 첫 6개월 이내에 감지된다고 한다. 즉 개척적 혁신제품이 출시된 이후 창의적 모방연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첫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개척자로부터 확보한 힌트를 바탕으로 개척자의 혁신제품을 뛰어넘는 제품의 연구개발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려면 창의적 모방기업도 혁신적 개척기업 못지 않은 기술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연구개발 활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적으로 우리기업들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개척자적 혁신도 해야겠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창의적 모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기술능력과 경영능력을 갖춰야 한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