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맨 홀 (103)

『전화가 대부분 두절되어 비상망을 활용할 수 없었지만 사고를 감지한 직원들이 스스로 비번자를 포함해서 다 출근했습니다.』

『그래?』

『예, 본사 쪽으로 노동조합 집회에 참여했던 노조원들까지 다 철수하여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그렇습니다.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 때문에 집회에 참여했던 노조원들도 사고발생 직후 바로 복귀했습니다.』

김지호 실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신의 중요성을 직원들에게 늘 이야기하곤 했다. 가장 객관적이며 확실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역사였다. 김지호 실장은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신역사를 설명해주곤 했던 것이다.

1888년 6월, 우리나라의 자주적 전기통신기관인 조선전보총국(朝鮮電報總局)이 문을 열었을 때 초대 총판 홍철주는 업무개시에 앞서 전보국 전무국기(電報局電務局記)를 찬술(撰述)하여 전기통신의 중요성과 개설의 의의를 밝힌 기록이 있다.

홍철주는 직원들의 중책을 역설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당부하고 있다.

『전기통신으로 필묵을 대신하였고 전광(電光)을 인도하여 우통(郵筒)을 대체했으니 일순간에 천리를 통신하고 만언(萬言)을 표현하였다. 이곳에 근무하는 자 어찌 명분을 돌아보고 직책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시초를 염려하고 끝을 도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전기통신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통신의 중요성과 공익성을 도입 초창기부터 숙지하고 전통으로 여기며 근무해왔던 것이다.

6.25동란 당시 행정부와 국군도 철수한 서울에서 마지막까지 통신업무를 수행하다 공산군에게 붙잡혀 고생한 통신인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빠른 손놀림으로 회선 절체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통신이 인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하여 생각했다. 지금 임의롭게 통신매체를 이용하던 이용자들은 통신의 두절로 인하여 통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부재를 통한 존재의 확인.

김지호 실장은 평상이 느끼지 못하고 있던 통신의 중요성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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