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국IPC부도 휘청거리는 유통업계 (3);파장

한국IPC 부도에 따른 피해가 일파만파로 업계에 번지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 두원그룹 지하 강당에서 긴급소집된 채권자들의 모임에서도 그 분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날 모인 채권자들은 약 50개 업체의 70여명으로 그동안 한국IPC의 관련사인 멀티그램에 자금이나 컴퓨터 주요 부품을 공급한 금융권 및 부품공급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날 모임은 두원측에서 마련한 자리가 아닌 채권자들의 긴급 모임이여서 이를 사전에 알지 못한 상당수의 채권자들과 한국IPC와 직접 거래했던 업체들이 불참했기 때문에 드러난 피해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업계의 예측을 보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한국IPC와 멀티그램의 연쇄부도로 예상되는 피해액은 1백50개사에 최소 7백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채권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일부업체의 연쇄부도그맥까지 합치면 한국IPC부도에 따른 피해액은 적어도 3백~3백50개업체에 1천5백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컴퓨터 주변기기 및 부품업체들이 모여 있는 용산전자상가엔 이미 여러가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IPC 및 멀티그램과 거래했던 업체중 30% 이상이 연쇄부도에 휘말려 경영자가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이번 부도사태로 몇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피해를 입은 70∼80개의 부품 및 주변기기 공급업체들이 이번주 직원들에게 지급할 설날 상여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IPC에 지난 연말 약 4억원 가량의 중앙처리장치, 메모리,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을 공급했던 D사는 어음만기일이 2월말로 돼 있으나 자금사정이 어려워 설날 상여금은 고사하고 이달치 직원 급여도 지급하기 어려운 실정에 처해 있다.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거래업체 뿐 아니다. 한국IPC와 거래관계가 비교적 적었던 조립PC업계도 상당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한국IPC가 부도처리됨에 따라 IPC제품을 확보하고 있던 사채업자들은 이를 현금화할 목적으로 대량 방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말부터 한국IPC는 자사 컴퓨터 완제품을 담보로 사채업자로부터 자금을 끌어 썼다. 사채업자들이 15인치를 모니터 포함한 펜티엄 1백33MHz급 멀티미디어PC 한 대를 담보로 빌려준 돈은 60만원.

당시 한국IPC는 시중에서 2백만원을 홋가하던 PC를 긴급자금을 빌려쓰기 위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에 담보로 맡겼으며 자금난이 본격화되던 12월말엔 이보다 10만원이 싼 50만원씩에 맡겨왔다.

지난 해 12월 견질 조건으로 PC 3천대를 확보해 둔 주변기기 판매전문업체 S사는 이달 중에 제품 모두를 용산상가에 내다팔 예정이며 이 업체 외에도 적게는 수백대에서 많게는 수천대씩 담보를 확보하고 있는 상당수의 업체들은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불리하다고 판단, 설날 이후 본격적으로 시중에 방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제품의 예상 판매가격은 대당 80만∼90만원선으로 시중 조립PC에 비해서도 절반 가량 싸다. 이런 추세라면 졸업 입학시즌과 맞물려 있는 연중 최대의 성수기는 고스란히 IPC 덤핑제품에 내줘야 할 판이다.

이뿐 아니다. 부도 여파로 자금 및 부품 시장이 악화될 때로 악화돼 있어 PC업곈 이중고를 치러야할 판이다. PC를 생산하기 위해선 주요 부품을 확보해야 하는데 부도 이후로 부품 공급업체들이 현금 또는 담보거래만을 요구하고 있고 자금시장도 꽁꽁 묶여 있어 부품은 많은데 자금이 없어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전자랜드에서 PC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Y사장은 『내주부터 시작되는 성수기에 주문 물량을 소화해 내려면 부품 및 주변기기류를 미리 확보해야 하는데 자금사정이 여의치 못한데다 신용거래해 오던 부품 공급업체마저도 담보를 요구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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