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ERP의 개발동향

국내 제조업체들이 고금리, 고임금, 고물가, 고규제 등 이른바 4高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ERP를 직역하면 「전사적 자원계획」이다. 정보의 통합을 통해 기업의 모든 자원을 최적으로 관리하자는 개념이다. 이와 관련,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ERP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R/3, BPCS, MAPICS, MFG/PRO, MAX 등 다양하다.

ERP는 1970년대의 MRP(Material Requirement Planning)와 1980년대의 MRP (Manufacturing Resource Planning) 개념을 모태로 하고 있다. 「자재소요량 계획」이라 불리는 MRP는 제품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즉 원자재, 가공품, 반조립품 등에 대한 자재 수급계획과 생산관리를 통합시킨 체계적인 제조정보 관리기술을 말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품구성정보(BOM;Bill of Materials), 표준공정도(Routing Sheet), 기준생산계획(MPS;Master Production Schedule), 재고 레코드 등의 기준정보가 필요하다. MRP는 이들 기준정보를 근거로 어떤 물건(원자재, 가공품, 반제품 등)이 언제, 어느 곳에서 필요한지 예측하고 모든 제조활동과 관리활동이 이 계획에 근거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자원의 비능률과 낭비를 제거하고 생산활동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주는 기법이다.

초기의 MRP시스템은 확고한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데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부족, 데이터베이스 기술의 미흡 등으로 시스템 구현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제조자원의 용량제한을 고려하지 않거나 또는 일정계획의 변동사항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등 문제점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제조환경이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바뀌고 고객지향 업무체계가 각광받으면서 수주관리, 판매관리, 재무관리 업무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또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데이터베이스나 통신 네트워크가 가능해지는 등 주변 여건이 갖춰지면서 MRP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기존 MRP의 문제점을 개선시키고 재무관리 등 중요 기능을 새로이 포함시킨 시스템으로 확장된 것이다. 생산현장의 실제 데이터와 제조자원의 용량 제한을 고려하고 자동화된 공정 데이터의 수집, 수주관리, 재무관리, 판매주문관리 등의 기능이 추가되어 실현 가능한 생산계획을 제시하면서 제조활동을 더 안정된 분위기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MRP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MRP는 「제조자원계획」이라 불린다. MRP는 스케줄링 알고리듬과 시뮬레이션 등 생산활동을 분석하는 도구가 추가되면서 더욱 지능적인 생산관리 도구로 발전했다.

1990년대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하고 기업들은 「제조자원계획」의 더욱 확장된 개념으로 등장한 통합정보시스템, 즉 ERP의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 ERP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 정보 컨설팅회사인 가트너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ERP는 결코 혁명적인 개념도 아니고 진정 새로운 아이디어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객회사, 하청회사 등 상하위 공급체계와 설계, 영업, 원가회계 등 회사내 연관부서의 업무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조에 관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ERP는 기존 MRP, MRP의 단점인 비유연성을 최소화하고 신기술인 객체지향기술, 분산 데이터처리, 개방형 구조, 라이트사이징(Light Sizing) 등을 받아들여 분산화, 개방화된 시스템으로 탄생한 것이다.

ERP는 생산 및 생산관리 업무는 물론 설계, 재무, 회계, 영업, 인사 등 순수관리부문과 경영지원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모든 업무에 덧붙여 고객회사 또는 하청회사 등 상하위 공급체계(Supply Chain)에 대한 최적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통합된 정보시스템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ERP가 완벽하게 구축된다면 이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고객회사가 그들의 주문을 직접 제조업체의 컴퓨터센터에 통보하면 제조업체의 컴퓨터는 자동적으로 자재 발주와 생산지시를 발송하고 최적의 생산 스케줄을 계산한다. 또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사전에 예견하고 가능한 사전 예방조치를 취한다. 결과적으로 고객에의 서비스는 극대화하면서 재고수준은 최소화하는 것이 가능하며 더욱이 이들 업무가 수행되는 동안 「활동기반 원가회계 시스템(ABC)」에 의해 모든 자금의 흐름이 파악된다. 따라서 최고 경영진은 기업 내부업무에 관한 모든 것이 문제없이 수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이 현실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해결할 과제가 많다. 우선 ERP소프트웨어의 크기를 보자. 시판중인 ERP소프트웨어 패키지는 기능별로 대개 수십개의 모듈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기능들은 적용대상에 따라 크게 생산관리, 물류관리, 재무관리 부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생산관리부문에는 기준생산계획, 생산능력계획, 자재수급계획, 생산데이터리, 품질관리, JIT(Just in time) 지원 등의 기능들이 포함된다. 물류관리부문에는 재고관리, 送狀관리, 창고관리, 수주관리, 판매관리, 물류관리, 수요예측, 구매관리, 실적평가 등의 기능이 포함되며 재무관리부문에는 원장관리, 환율관리, 예산관리, 재무보고, 원가관리, 미수금/미지급금 관리, 다중통화관리, 고정자산관리, 어음관리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BPR기능, 인력개발 기능에 대한 모듈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하나 하나의 모듈과 기능은 모두 규모가 큰 프로그램들이다. 생산관리부문을 예로 든다면 기준생산계획(MPS) 기능은 월간 수요예측, 생산능력, 재고량을 고려해 작성된 월 단위의 제품별 총괄 생산계획을 바탕으로 주 단위의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생산능력계획 기능은 MPS가 제조업체의 생산능력하에서 수행될 수 있도록 생산자원(기계, 인력)의 수급에 대한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단기적으로는 생산능력을 고려한 생산자원의 활용계획을 수립하면서 필요에 따라 상세 생산계획이나 MPS를 조정한다. 자재수급계획은 기준생산계획에 따라 제품이 생산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양과 품질의 자재가 꼭 필요한 부서에 공급되도록 계획한다. 자재수급계획은 ERP기능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기술적으로는 현재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RDBMS) 기술이나 하드 디스크 기술을 이용해 부품전개, 부품역전개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또한 제조업체의 분산화 추세와 다국적 기업의 등장으로 물류 흐름의 범위가 커지고 거리에 따른 부품 수급시간이 늘어나면서 물류시스템의 운용과 결부하여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같이 방대한 규모의 소프트웨어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ERP시스템의 구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적인 ERP에서는 최적 제조시스템 구축을 위한 많은 새로운 개념들이 동시에 추구되고 있다. 예컨대 CIM 혹은 CALS와 같은 구현도구를 비롯해 생산데이터관리(PDM;Product Data Management), 유한용량 일정계획(FCS;Finite Capacity Scheduling), 제조실행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셀제어시스템(CCS;Cell Control System) 등이 기업활동의 수준에 병행하여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최적 생산시스템과 관련된 용어들은 모두 지난 10년 이내에 등장했으며 모두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제조 철학과 기존의 제조철학(TQM, VE, IE, JIT, ZD, 5S, 지속적 현장개선 등)을 망라하면서 유연성 있고 쉽게 이식 가능하며 사용자에게 편리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ERP, MES, CCS, PDM 등의 시스템들은 CALS라는 체제하에서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CALS는 업무통합, 데이터통합, 물리적 통합을 지향하는 구현도구다. 여기서 업무통합이란 의사결정지원과 업무 모니터링 및 관리를 위해 기능, 작업, 조직단위체들간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적 통합은 하드웨어간 물리적 통합 및 데이터 파일의 전자적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통합은 응용 시스템간 데이터 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고 데이터의 중복저장이나 무결성을 지향한다. 이같은 CALS 구축에 MRP나 ERP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ERP시스템의 구축방법은 프로그램의 자체 개발(In­house Product)과 패키지 구입후 조정(Customization)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종전에는 자체 개발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최근에는 패키지를 구입해 조정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유는 자체 개발된 시스템의 경우 정보기술의 변화를 신속히 수용하기 힘들며 유지, 보수에 드는 노력이 크고 개발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요되는 등 단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는 R/3, BPCS, MFG/PRO, 오라클 애플리케이션스 등과 같은 유명한 ERP패키지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고 이 패키지들은 주로 시스템통합(SI)업체들이 공급하고 있다. 91년에 도입된 MFG/PRO, 92년에 도입된 BPCS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94년 말과 95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국내에 설치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외산 ERP시스템들은 문화적 차이와 업무 처리방식의 차이로 인해 설치, 운용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고 정상적으로 운용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들도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된 MRP 또는 ERP패키지들은 그 수가 많지 않고 보급도 아직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90년대 초반까지 개발된 많은 시스템들은 X-베이스 DBMS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PC를 운용환경으로 선택하고 있다. 80년대 말 한국기계연구소이 개발한 MRP프로그램 EYEPICS는 이미 상용화됐고 96년에는 대우정보시스템이 통합관리 소프트웨어인 MCCIM 1.0을 개발하기도 했다. 또 한국기업전산원 등에서 ERP패키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많은 국내 제조업체들이 ERP 시스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사실 국내 제조업체의 인건비가 국제 수준에 오른만큼 이제는 설계기술, 생산기술 등도 국제수준에 오르지 못하고서는 국제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ERP시스템의 구축은 국내 제조업체의 생산성을 올리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아직까지는 시장이 초기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나 그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ERP패키지가 완전한 객체지향 방식으로 개발될 것이고, 따라서 재사용성, 이식성, 개방성에 관한 문제도 대부분 해결될 것이다. 특히 인트라네트(Intranet) 환경과 초고속통신망 환경에 맞추어 시스템의 구조도 얼마간 변화가 예상된다.

국내에도 이미 많은 종류의 ERP패키지가 도입돼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ERP패키지들이 고가인데다 사용하기 어렵고 운용, 유지에 많은 인력과 투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ERP패키지는 결국 우리의 힘으로 개발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역량과 노력을 결집하여 한국형 ERP시스템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만이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큰 힘이 된다는 점을 소프트웨어업계가 인식해야 한다.

<필자소개>

朴珍雨 교수

74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76년 한국과학원 산업공학과 공학석사

76∼79년 현대양행(현재 한국중공업) 근무

80∼85년 미국 UC버클리 산업공학과 공학박사

81∼84년 미국 UC버클리 연구조교, 지도조교

85년∼현재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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