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 文 피라미드 코리아 부지사장
6년 전 세계 첨단산업의 심장부라 불리고 있는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사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새 들어온 전자우편을 읽어보니 미국인 매니저로부터 온 여러개의 우편 가운데 하나에 오늘 아무개 팀원의 생일파티가 있으니 오후에 회의실로 모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때 우리팀은 30여명이었다. 회의실에 가보니 많은 인원이 참석했고 매우 큰 생일케이크 2개가 준비돼 있었다. 따라서 나는 생일을 맞은 사람이 두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일파티의 주인공은 한명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두번 연달아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끄고 케이크조각을 분배했다.
그런데 두개의 케익 중 하나는 전형적인 미국식 케이크였고 다른 하나는 아주 투박한 중국식 케이크였기 때문에 나는 궁금해서 매니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우리팀에는 특히 홍콩과 대만출신(이주 1세대) 엔지니어들이 많았고 미국식 케이크로 생일파티를 할 때 주로 동양계는 케이크가 매우 달아 다 먹지 않고 남기는 일이 많아 일반적으로 동양인에게 적합한 중국식 케이크를 따로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날의 주인공은 중국계인가 인도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우리 팀에는 3분의 1 정도가 동양계 출신이었다. 따라서 회사는 이들 소수민족을 위한 여러가지 비공식적인 프로그램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미국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야말로 전세계의 각기 다른 인종의 모임 그 자체이다. 중국계(대만, 홍콩), 동남아시아, 인도, 유럽, 한국, 베트남, 중동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온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한다.
하이테크산업이라서 논쟁이나 심각한 의사주장을 통한 말싸움이 벌어지더라도 상대방을 국적이나 문화의 차이로 몰아세워 논쟁을 벌이는 일은 거의 금기로 돼 있다. 일할 때도 서로의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훌륭한 팀워크를 구현하려 한다.
서로가 인격을 존중하고 사생활을 침범하려 하지 않으니 회사 내에서 불필요한 논쟁거리가 없고 이것이 생산성에 직결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나이,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인사고과는 철저한 능력제이다. 나의 상사가 몇살인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는 관계없다. 정해진 시간 내에 또는 그 보다 일찍 자기업무를 마치면 남은 시간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택해 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인과 흑인간에 심한 인종갈등이 있지만 내가 15년간의 미국생활, 특히 실리콘밸리에서의 여러 회사에서 느낀 점은 다른 인종간의 집단에서 분열보다는 응집된 힘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이러한 것이 세계 첨단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실리콘밸리가 세계 하이테크산업의 메카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여러 다른 민족이 모인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이루어진 환경에서 오는 결과인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인종과 문화가 서로 다른 이민족을 하나로 융합시켜 세계 제일의 미국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용광로(melting pot)이론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는 하이테크산업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보다 더 막강한 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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