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CD롬 표절 유감

얼마전 젊은이들이 아이디어도 기발하게 아동용 쉐어웨어 프로그램들을 한장의 CD롬에 모아 시판하려다 우리 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리빙북 시리즈의캐릭터 및 데모 프로그램 무단 전제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악의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러한 무단 사용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는 무지의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적절히 시정하는 것으로 원만한 해결을 보았다. 아동용 쉐어웨어 프로그램을 모아서 하나의 제품으로 만들어 팔아보겠다는 생각은 요즘같이 게임 셰어웨어 모음 CD롬의 홍수 속에서 어찌보면 매우 자연스런 귀결일것이다. 특히나 멀티미디어 홈PC의 대량보급에 따라 아동교육용 CD롬의 판매가 게임 CD롬보다 더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셰어웨어 게임 모음집의 인기가 아동용 셰어웨어 모음집으로 전이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특정 제품의 캐릭터나 데모를 무단으로 사용할 만큼 지적 재산권에대해 무지하다는 데 있지 않다. 만일 법에 대한 무지라면 그것은 일시적인캠페인만으로도 해결될 테니까. 그리고 현재의 CD롬 시장 규모로 볼 때 그리큰 재산상의 문제를 일으킬 꺼리도 되지 않으리라.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아무런 노력이나 생각없이 「시류에 편승」하려는 태도이며 보다 심각하게는 타인의 노동에 대한 무임승차를 규제할 공통된 가치기준의 부재이다.

게임이든 아동교육용이든 셰어웨어 모음집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상당히 고가에 속하는 CD롬을 상세한 정보나 약간의 테스트도 없이 사야만 하는 처지를 고려한다면 셰어웨어 모음집은 많은 점에서 소비자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통신상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셰어웨어들을모두 모아 테스트해보기도 번거로운 일이려니와 셰어웨어들에 대한 일차적인선별에만도 엄청난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셰어웨어 모음집은 그 셰어웨어를 만든 사람이나 사용해야 할 사람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매개체인 것이다.

94년 중반부터 이런 틈새를 겨냥하여 셰어웨어 게임 모음집으로 성공한경우가 생겨나자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온 것이 셰어웨어 게임모음집이라 이제는 일일이 그 제목을 외울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셰어웨어들을 모으고 나름의 인터페이스를 설계하여 CD롬으로 만드는 작업에 소요된 시간이 어찌 그 안에 모아져 있는 각각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력에 견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런 류의 셰어웨어 모음집이 정상적으로 매겨질만한 가격의 3배 정도를 버젓이 달고 각 프로그램의 원 개발자에 대한 아무런소개나 언급없이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상황이라면 이건 거꾸로 가도 너무 거꾸로 가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눈꼴사나운사태에 대해 그저 비난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우리 회사 역시 셰어웨어 게임모음집을 출시한 경험이 있고 그걸 통해 커다란 이익을 보지는 않았더라도동일한 양태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현재의 시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반성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함께 고민하자는당부를 하고 싶은 것이다. 먼저 CD롬을 시작한 사람들이 이토록 무책임하게시류에 영합하고 원대한 포부를 상실한 채 눈앞의 조그만 이익에 익숙해질때 향후의 개발 풍토는 어떻게 흘러가겠는가. 나는 유치하게 들릴 정도로 삶의 진실을 담아놓은 그 가사 때문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표절시비로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 가요계와 그래도 버젓이 방송에출연하는 하이에나같은 가수들, 환호하는 대중들, 활개치는 리어카표 해적테이프. CD롬도 그렇게 가야만 하는가.

소규모 개발사들의 생존 그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잘 알고 있지만, 「편법」이 「정도」를 이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우리는 CD롬에 우리의 혼을 담아내는 것이다. 약삭빠른 교만에서 벗어나 우리의 혼을 고양하는데 주력하자.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는 소비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건범 아리수 사장〉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