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휴렛패커드
대기업들이 국내 컴퓨터 산업분야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시기는 76년부터이다. 당시는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 지 10년째로 접어드는시기였다. 이때 국내 컴퓨터산업을 이끌었던 3대 축은 한국IBM 등 외국계 현지법인, 동양전산기술(OCE) 등 외국컴퓨터기종 국내 대리점, 한국전자계산(KCC) 등 소프트웨어 용역개발회사였다.
이 당시 삼성전자·금성사·대한전선과 같은 전자산업 분야 대기업들의 사업영역은 흑백TV·냉장고·전자레인지 등 정부가 수출을 주도하고 장려하는가전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대기업들이 조기에 컴퓨터 분야에 눈을 돌리지않았던 것은 관련 기술이나 노하우 축적이 전무했던 데다 사업전망에 대해서도 대부분 비관적 시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결정이나 투자에 대한 우선 순위에서도 컴퓨터는 항상 가전 등 다른 분야에 밀렸다.
그러나 75년을 전후하여 국내 컴퓨터 도입이 급증세를 보이고 동양전산기술과 같은 중소기업이 미니컴퓨터 단말기 등을 국산화하면서 대기업들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무엇보다도 전자산업이 고도화돼 가면서 전자 제품의 용도가 가정에서 산업 현장으로 확대돼가고 있음을 보았던것이다. 산업용 전자가 바로 컴퓨터인데 이때 부터 대기업들은 부랴부랴 시장진출을 검토하고 제품 공급선의 확보하거나 직접 생산방법 등을 찾아 나서게 된다.
76년을 전후해서 이같은 움직임을 보였던 곳으로는 삼성전자·금성사·금성전기·금호실업·대우·금성통신·동양정밀(OPC)·벽산·쌍용양회·두산등이었다. 이들의 컴퓨터 분야 진출에 대한 검토는 2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하나는 미국과 일본 컴퓨터기업과 제휴, 국내에서 합작 생산을 추진하는 것이고 또 하는 외국기업의 대리점 사업을 통해 우선 노하우부터 축적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금성전기와 선경이 일본전기(NEC)의 미니컴퓨터기종 조립생산검토에 나섰고 대한전선은 후지쯔의 「파콤」시리즈 생산을 추진했다.금성통신과 동양정밀은 합작회사인 한국시스템산업을 설립하고 외국의 기술제휴선을 찾아 나설 정도였다.
또 후자 입장에서 외국업체의 국내 총대리점 사업에 나선 곳은 삼성전자(휴렛패커드)·금호실업(왕래버러토리즈)·오리콤(디지탈이큅먼트)·OPC(데이터제너럴)·한국화약(포 페이스)·효성(히다치) 등을 꼽을 수 있다. 금성사는 79년 맨 마지막으로 하니웰사 제품을 국내 공급하면서 컴퓨터사업 참여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기업 가운데 오늘날까지 컴퓨터 사업을 꾸준하게 이끌어 온 곳은 금성사와 삼성전자 뿐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모두 도산했거나 사업담당부서가다른 기업으로 인수된 경우에 해당된다.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던 컴퓨터기종 가운데 하나인 디지탈이큅먼트(DEC)를 공급하던 오리콤의 경우 나중에 두산컴퓨터를 설립하는 등 승승장구하지만 80년대 DEC이 현지법인을 설립하자회사조직이 공중분해 돼버렸다. 금호실업은 컴퓨터코리아라는 기업에 사업자체를 넘겼고 동양정밀은 동양시스템산업이라는 계열사를 통해 투자의욕을 보여지만 80년대말 그룹 전체가 부도를 내면서 운명을 달리했다. 금성전기와금성통신은 금성사로 조직이 이관됐다.
물론 엄밀하게 따진다면 삼성전자와 금성사의 컴퓨터사업 부문에 대한 계보도 정통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의 휴렛팩커드(HP)사업부문은 84년 삼성휴렛팩커드로 독립돼 나갔고 금성사의 하니웰사업 부분역시 81년 하니웰본사와의 공동 기술제휴 계약에 의해 계열사인 금성반도체로 이관되는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국내 컴퓨터 산업을 이끄는 양대 축으로 성장한 양사의 컴퓨터사업 부문은 적어도 계보상으로는 HP나하니웰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사의 오늘날 위치가 HP와 하니웰의 국내공급 또는 합작생산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에 기반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삼성전자와 금성사 등 두 별 가운데 컴퓨터사업을 먼저 시작한 삼성전자쪽이다.
70년대 초반 가전 분야에 이은 컴퓨터 분야에서의 별들의 전쟁은 76년 10월 HP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한 삼성전자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삼성전자의 선공에 대한 금성사의 응수는 78년 8월 컴퓨터사업부를 신설하고 미국의 하니웰사의 대리점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양사 모두 세계적으로 선풍을 몰고온 벤처기업 출신의 미국 컴퓨터회사 제품을 국내 들여와 공급하는총판영업으로 국내 컴퓨터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제1라운드 별들의 전쟁은 에상 외로 싱겁게 끝났다. 사실금성사보다 2년 먼저 사업을 시작한 삼성전자의 승리는 이미 예고된 거나 다름 없었다. 금성사 입장에서도 80년대를 기대하는 선에서 1라운드 게임을 매듭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76년부터 79년말까지 삼성전자가 국내에 공급 HP 주력 「HP 3000」 미니컴퓨터 기종은 무려 50대가 넘는다. 이같은 실적은 미니컴퓨터 분야에서 HP보다 4∼5년 먼저 국내 진출한 DEC·데이터제너럴·왕 등 3총사 가운데 왕은이미 앞질렀던 것이고 데이터제너널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치였던 것이었다. 반면 금성사는 이 기간 동안 공급한 하니웰 기종은 계열 럭키화학에설치한 「하니웰 레블6」 단 1대 뿐이었다.
삼성전자가 컴퓨터사업에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전자산업 전반에서 치열한주도권 경쟁을 벌인 금성사를 의식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당시 삼성 측 직원이던 Q씨는 들려주고 있다.
『75년 이후 삼성은 흑백TV·컬러TV·냉장고·전자레인지·세탁기·디지탈오디오 등 가전분야에서 금성과 막상막하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죠. 모든분야의 출발이 금성에 뒤졌지만 75년 이후 삼성의 만회가 눈에 보일 정도였죠. 이때 삼성 경영진들은 기존 분야에서 금성을 추월하는 것은 그다지 큰어려움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 이를테면 금성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이면서 장래가 유망한 분야....그것이 바로 컴퓨터 분야였던 거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75년 말이었고 삼성전자는 이때부터 미국과 일본지역의 그룹 거점망을 통해 대상 기업 물색에 나선다. 접촉 대상은 우선 국내에 현지법인이나 총대리점이 없으면서 시장성이 높은 제품을 내놓고 있는 기업이었다. 이때 삼성이 눈여겨 보았던 곳이 바로 미국 HP사였다. 74년 설립된 HP는 컴퓨터와 계측기 분야에서 미국시장을 휩쓸고 70년대 들어 일본 시장까지 넘보고 있었다. 삼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내 합작법인 요코가와휴렛팩커드(YHP)의 중개로 76년 8월 HP와 컴퓨터와 계측기 분야의 국내 독점공급 게약을 맺었다. 이어서 같은해 11월에는 전자사업본부 내에 HP영업과지원을 담당할 컴퓨터시스템부를 조직하게 된다.
삼성전자 컴퓨터시스템부가 급성장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HP와 계약을체결한 지 1년 만인 77년 8월에 찾아 들었다. 서울대 등 8개 국립대학과 연세대를 포함, 모두 9개 대학의 컴퓨터 도입기종 일괄 입찰에서 삼성이 최종낙찰된 것이다. 이 입찰은 문교부가 고급 전산기술 인력 양성과 대학교육의질적수준 향상을 꾀한다는 취지 아래 국제개발은행(IBRD)자금을 동원, 75년부터 추진해 오던 것이어서 사회적 관심도 높았다.
조달청이 실시한 이 입찰은 대학마다 1대 씩 모두 9대의 미니컴퓨터 기종일괄 공급할 업체를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참여회사는 삼성전자(HP)·동양물산(일본 오키전기)·동양전산기술(DEC)·한국전자계산(미국 프라임) 등 10개사나 됐다. 그뿐만 아니라 니혼미니컴퓨터(현 일본 데이터제너럴) 등 일본기업은 한국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입찰에 응하기도 했다. Q씨가 우연한기회에 입수, 현재까지 소지하고 있는 각사 응찰내역 문서들을 보면 「HP3000 II」를 제안한 삼성전자의 입찰금액은 모두 1백36만 달러로 기록돼 있다.
Q씨는 당시 「HP 3000 II」 9대분의 국제 입찰가격은 2백50만 달러였는데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응찰한 것은 HP본사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려주고 있다.
이전까지 HP기종 공급 실적이 1대에 불과하던 삼성전자는 한꺼번에 9대의공급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지원 및 영업 조직을 갖추게 된다. 삼성전자는 또 9대의 컴퓨터 설치가 완료된 78년 4월을 기해 컴퓨터시스템부와계측기부를 주축으로 하는 산업기기사업본부를 출범시키면서 독립채산제 성격의 컴퓨터 사업조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삼성전자가 덤핑 입찰을 불사하면서 9개 대학 기종공급권을 따낸 것은 도입기관이 교육기관이자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를 노린 것인데이 의중은 그대로 적중한다. 실제 78년 한해 동안 삼성전자의 HP기종 판패실적은 국내 미니컴퓨터시장의 50%를 독식했고 HP의 해외판매업체중 일본 YHP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89년 발간된 사사 「삼성전자 20년사」는 이때의 전후 사정에 대해 『77년전국 9개 대학 컴퓨터 공동구매 입찰에서 낙찰에 성공함으로써 사업기반을굳혀 나갔다. 이 성과에 힘입어 일반 기업체를 대상으로 판매를 촉진 시켰고...』라고 적고 있다.
삼성전자의 컴퓨터사업 부분의 초창기 주역들로는 초대 컴퓨터시스템부장전인수를 비롯, 영업과장 김영한(현하이테크리서치 소장)·지원과장 임득순(현 한국HP이사) 등이다.
한편 78년 8월 금성사는 당시 부사장이던 심흥주(현 큐닉스 회장)를 사업부장으로, 김대규(현 한국데이터베이스학회 회장)를 컴퓨터본부장으로 컴퓨터사업부를 발족시켜 삼성전자의 쾌속질주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어 78년10월 하니웰과 독점총판계약을 맺고 「하니웰 레블6」 기종의 국내 공급을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금성사가 70년대 말까지 주력한 부분은 76년 출범한 금성중앙연구소가 국산화한 금전등록기나 전자식 출납회계기 사무기기였다. 금성사는 삼성전자와 달리 이들 전자 사무기기를 마이크로컴퓨터 칩을 이용하는 최첨단컴퓨터 응용기기로 여겼고 금성중앙연구소를 통해 이들 기기를 시장 주력 품목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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