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정보통신사업 협력과 경쟁

요즘 우리나라 정보통신 서비스 사업 분야에서 업체간 경쟁이 너무 과열되고있는 느낌이다. 이를 의식한 듯 얼마전 정보통신부는 신규허가 사업자 선정을 내년 상반기로 연기했다. 신규로 허가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해당기업체의 업무담당자들은 피를 말리는 노력과 정성을 쏟아 붓고 있다. 더 나아 가서로 물고 뜯는 일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신규로 허가될 정보통신 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기존에 이미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경쟁이 너무 과열되어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진정 우리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느낌이다.

세계무역기구(WTO)출범과 함께 전세계의 시장은 개방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보통신 서비스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력이 필요하다.

그래서정부는 시외전화와 같이 기존에 사업자가 있음에도 또 다른 사업자를 지정하고, 신규로도 사업자를 선정하려고 추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방화 된 환경에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것은 경쟁을 빌미로 우리끼리 치고 받는 식의 싸움에 너무 열중하고 있다.

세계시장을상대로 한 번 본선에서 제대로 경쟁도 하기전에 우리끼리 예선전 에서 너무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너무 과열되어 폐단으로 보이는 몇 가지를 보자.

우선 첫번째 예를 보자. 신규 서비스 사업허가를 발표하니 기존의 정보통신기기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정보통신과 전연 관계도 없는 기업체까지도 넘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전문화"가 중요하다는사실에 역행되는 것이다. 에릭슨은 정보통신기기 제조회사로서 세계에서 몇번째인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80년대 중반 필자가 에릭슨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컴퓨터 산업에 진출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일언지하에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 교환기 등 통신기기 제조업에 전념하겠다는 것이었다. 교환기에는 컴퓨터가 많이 쓰이고, 이를 조금만 확장하면 쉽게 독자적인 컴퓨터기종 생산이 가능하다. AT&T는 교환기에 사용되는컴퓨터를 일반 범용으로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별로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최근 AT&T도 서비스사업, 기기제조사업, 컴퓨터사업을 완전 독립된 회사로 바꾸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슨의 기본방향이나 AT&T의 최근동향은 개방화된 환경에서 "전문화" 즉 "한우물 파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가려 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수 없다.

두번째 예를 보자. 서비스 사업경쟁이 너무 과열되다 보니 외국산 정보통신기기를 무턱대고 도입하려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상당한 기술기반이 닦여있는 국산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산 장비를 마구잡이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기능, 가격, 향후 개량개선 등 면밀한 검토도 없이 외국상표로 유리한 경쟁의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는 일부 몰지각한 젊은 세대가 외제차를 몰고, 외국산 옷을 걸치며 뽐내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정보통신기기는 혼자서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과 통신프로토콜에 알맞게 된 것이어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는데, 정보통신 서비스사업의 과당경쟁이 무역적자를 촉진시켜서야 되겠는가.

세번째 예를 보자. 내년부터 이동전화 서비스 제공을 시작하려는 모 업체 는이미 기술의 효력이 떨어진 구식 아날로그 방식의 시스템을 지금에 와서 도입 설치하겠다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요즘신규로 서비스를 시작하는 업체는 최신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이나 최소한 시분할다중접속(TDMA)방식의 디지털 방식을 채용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것은 앞에서 지적 했듯이 "경쟁"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이다. 경쟁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써온 아날로그 시스템이 있는데, 지금와서 경쟁사와 동등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곧 철거에 들어가야할 옛날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과열된 경쟁의 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PCS방식 선정등 과열되고 있는 예가 더 있으나 지면의 제약으로 생략키로 한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끼리 싸우고 있는데 눈을 한 번 밖으로 돌려보자. 미국 과일본의 대기업이 차세대 HDTV기술 공동개발을 추진키로 했다느니, 유럽의 대기업과 일본의 모 대기업이 1기가 메모리 칩 공동개발을 추진한다는 등의 신문기사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치열한 경쟁자 사이에서도대승적인 차원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좁은 땅덩이 위에서우리는 왜 서로 지나치게 치고받고 해야 하는가.

정보통신서비스는 다양한 장비가 서로 연결돼 총체적으로 이용자에게 서비스가 제공되고 이용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서비스업체가 다수 있어도 서비스업체의 장비는 서로 연결되어 원활한 운용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이용자가만족하는 것이다.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에 소요되는 장비는 일정한 표준에 따라야만 상호연동에 문제가 야기되지 않는다. 무턱대고 돌출적으로 어느 특정 장비를 쓰거나 외국산을 도입한다고 결코 유리하지는 않다. 이러한 면에서 정보통신 서비스업체간에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낡은 장비는 새로 구입 설치하기 보다 일정기간 공동으로 이용하면 안될까.

정보통신서비스 산업은 성장산업이다. 총량적인 규모가 매우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 분야다. 크기가 정해진 빵을 서로 많이 가지려는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어떻게 하면 빵의 크기를 키우느냐에 좀더 노력을 기울여야 겠다.

그러자면서로 너무 치고 받고 싸울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서로 협력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야 될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진짜 한바탕 싸울 것인가에 더 골몰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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