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릴 때 가장 앞서는 것은 그 문 뒤에 펼쳐질 미지 의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자신이 익숙한 문만을 열고닫는다. 아무리 동일한 모습으로 지어진 아파트라도 자신의 집이 아니면 문을열지 않고, 아무리 비슷한 건물이라도 자신이 드나드는 회사의 건물이 아니라면 쉽게 드나들지 못한다.
현대사에서 우리에게 잊혀질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온 "10.26"을 극화한 방송프로가 "코리아 게이트"라는 타이틀로 방영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어도무방할 것이다. 누가 감히 그 시절에 통치자의 암살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누군가는 어느 시점에선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왔기에 인간은 일찍이 이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누리지 못한 종족 의번성을 누리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컴퓨터 게이트"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 지나친 과장의 비교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지난 반세기 동안 인간이 컴퓨터로 인해 겪어온 변화를 표현하기 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이 칼럼이 실리는 매체도 그 변화의 산물 중 일부분이지만 컴퓨터가 우리들 주변에서 일으킨 변화에 대해 일일이 예를 든다는것이 부질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변화들은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늘부담스런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15년 전쯤에 설계 또는 엔지니어링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 그의 사무실을 열고 들어선다면 하는 가정을 해보자.
연필가루에 흰 와이셔츠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팔 보호대를 하고 밤샘 작업을 하다 청사진을 덥고 사무실 바닥에 잠든 직원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걷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그가, "펜티엄 세대는 먼저 갑니다! 라는메모지가 붙어 있는 컴퓨터 모니터 사이로 들어서며 정시가 되어야 출근하는 빈 사무실을 접한다면 그에게 그 문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자신이 하루종일 숙달된 손놀림으로 그리던 도면을 단지 몇 분만에 완성하고 몇 달씩 걸리던 프로젝트를 야근 한 번 하지 않고 훨씬 짧은 기간에 일 을마무리하는 오늘의 캐드세대를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 더욱 심각한 것은이시간적 차이가 실제로는 현재라는 시간속에 섞여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컴퓨터 게이트를 열고 들어섰지만 아직도 그 문 앞에서 닥쳐올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고, 아예 그 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컴퓨터에 깊숙이 관련된 사람들이라도 이 두려움의 문을 쉽게 넘어서지는못하고 있다. 정보 또는 지적인 재산 부분의 평가가 무척 낮은 우리 사회의 단점의 하나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는 전시적인 효과라도 있으므로 그나마 열기 쉬운 문의 하나라면, 소프트웨어 부분은 막상 그 투자를 앞에 놓고 많은 망설임을 갖게 하는 풍조가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이라고단정하는 것은 우를 범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는 소프트웨어 에대한 투자에서 큰 낭패를 당한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을 적게 들이려는 단편적 사고가 개발능력 부재의 부적격자들에게 일을 맡기는 실수를 범하게 하고, 그 대가로 실패와 "다른이라고 해서 할 수 있을까"하는 다시 시도하기 힘든 두려움을 갖게 되는 예도 흔하다. 또한 가능하다면 개발하기보다는 손쉬운 패키지상품 구매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들은 외부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컴퓨터 게이트를 굳게 걸어잠그게 되는 근본 요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실패 의 두려움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우리네 속담 중 하나이지만, 컴퓨터에서는 두드려본 돌다리도 다른 이가 건너는 것을 보고서야 건넌다고 하면 어울릴 정도로 그 두려움이 크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주저앉는 사람들뿐이라면 장황히 늘어놓은 앞서의 변화들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근 필자는 한번의 실패를 겪었음에도 다시 많은 비용을 들여 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결과적으로는 효과없는 투자였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컨설팅을 해준일도 있다. 아무도 해본 일이없는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을 앞에 놓고 "실패한다고 해도 남는 것이 있겠지 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배경으로 꿈의 청사진을 함께 펴보자는 이도 만나고있다. 모두 그들 앞에 맞닥뜨린 컴퓨터 게이트의 손잡이를 힘차게 밀치고 있는이들이다. <(주)아론연구소 대표> 김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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