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정보통신 비사 소리없는 혁명 (33)

아무튼 반도체 개발을 둘러싼 청와대 경제비서실과 경제부처간의 일차적인 싸움은 경제비서실팀의 승리로 끝났다. 1981년 12월 경제비서실 과학기술비 서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관.민.연 합동의 협의기구인 반도체공업육성추진위원회가 청와대 내부기구로 설립되어 반도체 개발계획을 주도해 나갔다. 이 위원회는 1983년 5월 정보산업육성위원회로 개편되었으나 그 기능이 확대되 었을 뿐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는 기능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발 주체인 민간기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당시 TV나전자시계용 반도체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과 금성 대우 등이 있었는데, 어느 기업도 막대한 설비투자가 소요되는 메모리반도체사업 에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전대통령의 밀명을 받은 최순달 체신부 장관이 그들 기업을 순방하며 설득작업에 나섰으나 기업들의 반응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최장관은 한국통신 이우재 사장에게도 반도체 개발에의 투자를 강조했다.

이사장이"왜 한국통신이 반도체에 투자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반도체가 어디에 많이 들어갑니까? 전자교환기가 반도체 투성이 아닙니까. 일본도 NTT 연구소가 중심이 돼서 메모리반도체를 개발했던 것 아닙니까. 한국통신 같은공기업에서 반도체 개발에 앞장서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매우 유익한 일이 될겁니다 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업들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 경제비서실팀은 자금의 여유가 있는 현대를 끌어들여 경쟁을 붙이기로 하고, 그 반응을 떠본 결과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 작업의 주역인 홍성원비서관의 말을 들어보자.

"궁여지책으로 현대를 끌어들이기로 했는데, 현대는 기다렸다는듯이 OK했어요. 그래서 현대에게 절대로 가전분야에는 뛰어들지 말라는 전제조건을 달았습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취약 분야인 부품산업과 산업전자에만 투자 하라고 못을 박았던 거죠. 아무튼 현대가 반도체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자 그때부터 삼성이 열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현대가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시점을 전후해 삼성은 64KD램 반도체 의개발계획을 발표했고, 그후 8개월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의 막강한 조직력과 추진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삼성이 극적인 성공으로 흥분에 빠져 있던 것도 잠깐이었다. 64KD 램이 양산체제에 접어들어 수출이 시작되자 반도체 값이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삼성이 개발할 때 1매당 15달러이던 것이 40센트까지 떨어졌다. 국내에서는 그 이유를 일본이 무자비한 덤핑 공세를 취하기 때문이라분석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삼성반도체통신 강진구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그때 64KD램이 나온지 3년이 됐고, 256KD램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일본은 이미 개발을 완료해 생산해 놓고 있었고 미국은 생산도 안하고있었죠. 그런데 메모리반도체가 앞으로 반도체 기술을 주도하는 유망산업이 다 해서 세계 각 회사에서 다투어 개발하다 보니 세계 시장이 넘쳐 흐르도록쏟아져 나왔어요. 그러니 값이 떨어질 수 밖에요. 삼성에서 64KD램을 처음내놓을 때 1달러 80센트였는데 조금 후에 38센트까지 떨어졌어요. 38센트면 재료비도 안되는 거죠. 일본이 장난을 친 게 아니라 사실은 일본도 당했던겁니다 반도체 값이 급락하자 삼성은 64KD램을 개발해 놓고 재고가 잔뜩 쌓여 죽을쑤고 있었다. 그러자 신문은 연일 그러한 사실을 대서특필로 보도하며 그 이유를 일본의 덤핑 공세로 몰아붙였다. 반도체 개발을 주장했던 청와대 경제비서실 팀은 그 엄청난 사실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자 전대통령이 홍성원 비서관을 불러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마땅한 대책을 세울 수 없었던 홍비서관은 전대통령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이번 일은 일본이 실수한 겁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게임을 잘못걸어온 겁니다. 일본은 메이커가 여러 개인데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99%나 되지만 한국은 삼성 한 회사에 1%에 불과합니다. 반도체 칩 1개당 1달러씩을 내리면 우리는 1달러를 손해보지만 일본은 99달러를 손해보는 겁니다.

따라서일본이 덤핑을 한다 해도 이번 한번밖에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삼성 밖에 생산을 안하니까 삼성만 도와주면 되고 망하더라도 삼성만 망하지만, 일본은 여러 회사가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회사가 다 손해를 봅니다.

따라서이번에 삼성을 도와서 버티기만 하면 일본은 전의를 상실하게 됩니다. 둘째, 미국은 한국이 망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반도체시장을 독점해서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상반되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도 일본이 덤핑행위를 계속하지 못합니다.

셋째, 이번 사태는 어떤 경제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한 마디 로한일간에 반도체전쟁이 벌어진 겁니다. 그리고 전쟁이란 무슨 수를 써서라 도이겨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256KD램에 재투자를 해야 합니다. 수 천억원을 들여서라도 256KD램 개발에 당장 착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기는길입니다 비경제적인 논리였지만 홍비서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비전 문가인 전대통령으로서는 256KD램에의 투자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경제기획원에 재검토 지시를 내렸고, 경제기획원은 다시 KDI로 하여금 위원 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처럼 곤경에 처해 있는 반도체 문제를 해결한 것은 개발 주체인 삼성이 었다. 삼성은 64KD램이 해외시장에서 죽을 쑤고 있는데도 그것의 개발에 이어256KD램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미 메모리반도체사업에 손을 댄 이상 한때 의불경기로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64KD램 하나 가지고 돈벌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앞으로의 유망산업이니까 계속할 생각이었죠" 강진구 사장의 말이었다.

64KD램을 개발한 지 1년이 채 안된 84년 10월 삼성은 256KD램의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외국 회사로부터의 기술 도입에 실패해 삼성 자체의 힘으로개발했다. 이어 86년 7월에는 1MD램의 개발에 성공했다.

1MD램을 개발할 때는 기발한 전략을 세웠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미국 에있는 연구원들은 대우에 따라 자주 자리를 옮기므로 믿을 수 없다는 약점 이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기술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이없을까하고 궁리한 끝에 맨투맨(man to man)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즉, 미국의 현지법인인 트라이스타의 연구원 32명에게 각각 한 사람의 삼성 직원 을붙여 1대 1로 기술을 전수받게 했다.

그리하여 삼성은 본사의 사원 중 입사한 지 4~5년쯤 되는 과장급에서 머리 가우수한 사원 32명을 뽑아 트라이스타의 연구원 32명 밑에 한 사람씩 붙여놓고 상대방의 기술을 완전히 전수받도록 했다. 연수기간은 1년으로 일종의도제 생활을 시킨 것이다. 그날 그날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도제들간의 토의를통해 이해케 했으며, 그날 배운 내용은 반드시 정리하여 기록에 남기고 한 달에 한번씩 본사에 보고토록 했다.

1년만에 본사로 돌아온 제자들은 자신만만했다. 그들은 64KD램이나 256KD 램의 기술은 충분히 읽혔으므로 1MD램의 개발은 그들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그러자 트라이스타의 연구원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당연히 자기들이 맡겠다고 나섰다. 국내와 미국의 두 연구팀간의 경쟁이 불가피했는데, 결과는 국 내팀의 승리로 간단히 끝났다. 1년생의 제자들이 10년 내지 15년생 베테랑급 스승을 물리쳤던 것이다. 두 연구팀간의 자존심 대결은 4MD램으로 이어졌는데 그 싸움에서도 역시 국내 팀이 승리했다.

아무튼 1MD램의 개발은 설계로부터 각 공정, 최종 생산에 이르기까지 순수 하게 국내 기술진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이로써 우리나라도 반도체 제조기술 의자립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삼성이 256KD램을 개발하여 양산단계에 접어들 때도 세계의 반도체 경기는 여전히 불황이었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나자 반도체 값이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 84년 반도체 값이 폭락하여 가격 붕괴현상을 일으키자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 기업들은 반도체에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 기업들이 256KD램의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반도체의 공급은 줄어드는 한편 세계경기의 회복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86부터 시작된 상승곡선은 87년에 피크를 이루었다. 불경기 속에서도 256KD램 체제로 재빨리 전환한 일본기업은 떼돈을 벌수 있었으나 장마철에 대비하지 못한 미국 기업 은 그때부터 일본에 밀리기 시작했다. 64KD램사업의 성패에 관계없이 256KD 램의 개발을 밀고 나갔던 삼성도 덕분에 뭉칫돈을 벌어 누적된 적자를 해소 할 수 있었다.

"64KD램을 개발해 놓고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자 대부분의 반도체 메이커 들이 그 이상 반도체에 투자할 생각을 안했어요. 그러자 반도체 물량이 딸리 기시작했고 86년, 87년쯤 돼서 거꾸로 반도체 값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38센 트까지 떨어졌던 64K 칩이 5~6달러, 2~3달러이던 256K가 7~8달러로 뛰어올랐죠. 그때부터 삼성도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엄청나게 벌었죠. 그동안 64K에 서손해본 것과 256K에서 초기에 손해본 것을 다 제하고도 더 벌었으니까요" 강진구 사장의 말이었다.

그때부터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쾌속의 고속도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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