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라는 외길만을 달렸던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는 명언은 PC라는 외길을 달려온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즈9 5의 출시를 앞두고 미리쓴 DOS의 묘비명과는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프로그래머들에게 있어서 16비트와 32비트는 64K와 4G바이트라는 어드레싱 단위의 엄청난 차이로 인해 DOS가 사라질 것이라는 당연성에 대해 아무런 반론도 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노병에게 무덤까지 미리 파주면서 죽어달라고 사약까지 내려서야 될 일인가 싶다.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의 대다수가 이용하는 문서편집기의 경우 다양한 서체 와 그래픽정보의 처리까지 손쉬운 GUI환경의 DTP(Desk Top Publishing)로 옮겨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남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32비트 OS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처럼 보이고 멀티미디어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고성능의 하드웨어에 집착하는 것이 정도일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앞서의 시스템들이 요구하는 것이 32비트 운용체계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공감을 가지고 변화를 주도하는 요인이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고 집필에는 286 노트북PC이상의 컴퓨터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CAD시스템의 도면작업을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32비트시대 의 컴퓨터환경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너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컴퓨터를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윈도즈95의 출시를 앞에 두고 많은 컴퓨터 구매자들이 하드웨어의 호환성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에 망설이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고성 능의 컴퓨터를 구입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러면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586 컴퓨터가 시장을 공략하는 시점에서 486DX 4의 선전과 함께 486의 신화는 끝나지 않은듯이 보이는 상황이 과연 이러한 충고에 적절한 것인가.
단순히 가격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내의 컴퓨터 시장은 1백만원에서 2백만원대에 포커스를 둔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의 경향을 보면 1백만원 이하의 제품은 곧 사장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2백만원을 넘는고가의 제품은 이내 1백만원대의 대중적인 제품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뜻한다. 가격대에서 대중적인 시스템들은 이미 32비트 OS의 운용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 반증이라도 하듯이 국내에도 상당수의 OS/2 Warp사용자들이 있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의 CAD시스템 시장을 80%이상 점하고 있는 오토데스크 사의 오토캐드는 아직도 대부분이 DOS버전이다. 새롭게 출시된 R13이 C로 재코딩되어 32비트 체계를 위한 준비를 이미 완료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내재된 버그로 인해 사용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이 너무 방대해진 까닭에 기존의 저가 시스템을 손쉽게 이용해오던 사용자들 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개인적인 기호에 의해 286시스템 에서 16비트 DOS의 워드프로세서를 쓰는 많은 사용자들과 함께 아마도 이들이 32비트 운용체계의 가장 마지막 탑승자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 필연적인 환경의 변화가 이들 역시 32비트 운용체계로 옮겨가게 할 것이다. 다만 강요된 선택이 아니었으면 한다. 맡은 바 할일을 다하고 무대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노병에 대한 애정이 아니더라도 고성능의 개인용 컴퓨터와 함께 시작한 오늘의 신세대와 달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컴퓨터를 아끼고 새로운 컴퓨터 세대를 준비해준 많은 사용자들에게 어느 순간단절되는 암흑과도 같은 변화가 아니기를 바란다. 그런 변화는 오히려 새로운 DOS의 탄생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아론연구소 대표〉김 준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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