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54)

그러나 다른 경쟁사들은 판촉광고활동을 열심히 한데 반해 선사는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분기마다 1백%의 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별로 없다. 개방형 유닉스컴퓨터는 다른 경쟁업체 제품과는 현저하게달랐기 때문에 고객들은 제발로 찾아왔다. 경쟁사들은 후에 선사의 사업방침 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며 한 업체가 독점할 수 있는 기술개발보다 엔지니어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빌 조이는 모든 것을 혼자 하려 하며 수직적으로만 구성된 회사는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증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80년대 분석가들이 깨닫지 못한 점을 알게 했다. 즉 각자 개성있는 마케팅전략을 가진 중역진들의 단합된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되었던 것이다. 백톨샤임과 조이는 회사가 채택할 기술방향을 결정하는 역할 을 담당했고 맥닐리와 라크루트는 사업운영방침을 결정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은 한 기업이 모든 기술분야에서 선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듯 한사람이 모든 분야에 탁월한 관리능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드웨어및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최신정보를 수집하고 주식분석가를 만나고 생산작업을 관리하는 등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돌봐야 할 수없이 많은 업무 들을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가지 일에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과 정신은 한정되어 있다. 컴퓨터에서는 "대역폭이 이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제한된 능력 을 선사는 의사결정권을 하위직에게 내려보냄으로써 해결했다.

백톨샤임과 조이는 회사 시장변화를 주시하며 기술적 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하드웨어 전문가인 백롤샤임은 경쟁업체의 판매실적을 철저하게 파악했다. 맥닐리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명의 통찰력에 회사의 운명을 맡기기보다 능력있는 여러사람이 서로 협력하는 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고 하면 협박이라도 해서 순순히 따르도록 했다"고 농담삼아말하곤 했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맥닐리는 그 계획에 따라 일을 원만히 수행해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하키 선수가 반대팀의 선수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거친 경기를 하듯 공석에서 경쟁업체들에 대해 거침없이 말을 했다. 그런 그의 태도 때문에 실리 콘 밸리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은 선사는 경쟁상대가 없는 대신 적이 많다고비꼬았다. 맥닐리는 컴퓨터업체는 선사가 망하면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활주로 끝에는 분명 승무원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은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넥스트가 창립된 85년에는 여타 업체와는 다른 독특한 기술을 갖추지도 못한선사가 또 기술을 라이선스 제공받거나 판매하는 선사가 컴퓨터업계를 혁신 하여 대기업으로 하여금 기존의 메인프레임을 선사의 고속 워크스테이션이나 그보다 파워가 떨어지는 퍼스널 컴퓨터로 교체하도록 큰 위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선사는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여러 제품에서 호환 사용될 수 있도록 한 IBM의 개방형 표준에 준거한 제품을 생산했다. 유닉스 고객들이 호환이 안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되기 전인 80년 이전에는 특히 그 경향이 두드러졌다. 마이크 로프로세서를 기본으로 하고 IBM PC를 처음 탄생시킨 퍼스널 컴퓨터 업계에서는 소프트웨어 호환성에 관련된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해서 컴퓨터 산업에서 PC업계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티브 잡스는 IBM PC가 일으킨 혁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는 매킨토시에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채용했고 한 제조업체가 자사만의 하드웨어를 생산하도록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잡스는 당연히 넥스트 컴퓨터를 제조할 때도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위한 소프트웨어 표준을 채택하지 않고 독자의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넥스트는 표준화를 향해가는 강력한 조류를 역행하여 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넥스트는 또 선사와는 반대로 기업문화 때문에 난처한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넥스트사에는 서로 견제하며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지도부가 없었으며,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기술 담당책임자들은 시장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기술 분야에서선두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를 했음에도 넥스트의 첫 제품이 완성되자 직원 들의 입을 통해 그 우수성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기 보다 대중 매체를 동원하여 마케팅 활동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넥스트의 결점은 88년 입방체형 컴퓨터가 발표되기 이전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넥스트는 실제보다 능력이 큰 것으로 보였다. 넥스트가 곧 비장의 무기를 들고 나올 것을 우려한 선사의 백톨샤임은 13페이지에 달하는보고서를 작성해 대학 고객들을 겨냥한 성능이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한 신제 품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그 컴퓨터의 코드명은 "캠퍼스"로 정했다. 백톨 샤임은 대학이 머지않아 곧 수천대의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할 것이고 따라서R ISC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저렴한 컴퓨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사는 RISC기술이 유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84년 RISC칩을 개발, 반도체 업체가 공급하는 CISC(복합명령어세트컴퓨터)칩 대신 채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87년 선사는 RISC칩을 서버에만 채용했다. 백톨샤임은 같은 RISC 칩을 탑재한 저가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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