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대만 PC시장 비상 (4.끝)

지난 90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PC의 저가화추세로 경영부진에 허덕이던 대만의 주요 PC업체들이 성장궤도에 재진입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최근들어 경영권을 2세들에게 맡김으로써 대담한 조직개편및 생산체제의 변환등을 통해 체력다지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이서사의 경우 지난 91년의 그룹전체 결산에서 2천2백7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PC의 저가화와 인건비및 환율상승등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94년의 이익은 전년도에 비해 2.7배나 많은 2억5백만달러를 기록 경영상황이 급진전됐다. 매출액 역시 68.6%늘어난 32억달러로 대폭적 인 신장을 기록했다.

에이서가 개혁에 착수한 것은 지난 92년말. 에이서는 이때 새롭게 도입한 조직을 컴퓨터에 비유해 "클라이언트서버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에이서는 규모가 큰 본사를 가진 계층적인 조직이 아닌 TI.에이서、 에이서아메리카등사업부문및 판매지역마다 나뉘어진 그룹회사가 각각 독립되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에이서는 이로써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꾀하고 있다.

에이서의 시진영 회장겸 CEO는 권한을 하위직에 이양함으로써 커다란 권한을 가지지않는다는 이른바 "대권방락"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관련, 시 회장은 그룹 각사의 사장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에이서에서는 그룹의 중대한 방침은 시회장이 세우고 있으나 세부적인 사업은 시회장에서 신세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같은 신세대를 대표하는 한사람이 PC의 개발및 제조를 담당하는 그룹의 핵심회사인 에이서의 임헌명사장이다. 임사장은 대만교통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회사에 근무한후 지난 79년에 사원 30~40명의 중소기업이었던 에이서로 전직 그후 93년에 에이서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임사장은 "개혁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회장이지만 이를 추진하는 역할은 우리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임사장은 부사장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개혁의 선봉장으로 일해왔다.

에이서의 개혁은 조직개혁과 소비지에서 최종적으로 완성품을 조립하는 "패 스트푸드형" 생산체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새로운 생산체제는 PC를 몇개의 블록으로 나눠 블록별로 생산하거나 구입 해 소비지에 가까운 조립공장으로 운반한다. 조립공장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MPU 의 종류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용량등 그때 그때의 추세에 따라 적당한 블록을 맞춰 완성품으로 만들어 출하한다.

PC시장은 변화가 심해 히트상품도 6개월정도만 지나면 유행에 뒤지게 된다.

더욱이저가격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채산성유지도 어렵다. 이같은 PC시장에서 신속한 모델교체、 납품기간의 단축、 경비절감의 요청에 대처할수있게 제안된 것이 바로 이 새로운 생산체제였다.

한편 에이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마이택사도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중 이다. 창업자인 후청웅은 지난 94년에 사장자리를 채풍사에게 물려주고 부회 장자리에 앉았다. 마이택본체는 채사장이 처리하고 후부회장은 신규사업등 관련회사를 담당한다는 역할분담체제를 구축했다.

마이택의 개혁 역시 PC의 급격한 저가추세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마이택이 도입한 것은 2년전에 완성한 세계 각거점을 연결 한 컴퓨터네트워크와 프로젝트팀제도이다. 이것 역시 빠른 의사결정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이서의 개혁과 비슷하다.

프로젝트팀제도에서는 제품별로 개발、 판매、 품질관리등의 조직을 횡적으로 구성해 10여명의 사원이 한팀을 이룬다. 그리고 한사람의 사원은 통상 2~ 3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타이베이본사와 신죽과학공업단지에 나누어진 프로젝트팀의 구성원들 사이의 연락이나 세계각지의 보고는 전자우편이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채사 장의 업무수행에도 컴퓨터네트워크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채사장이 처리하는 전자우편은 하루평균 1백통정도에 달하고 있다. 이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지역의 판매실적도 그날 그날 PC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게됐다.

한편 에이서나 마이택등 대만의 주요 업체들은 PC의 저가격화에 인건비및 환율상승이 겹쳐 대만에서 표준제품을 싸게 만들어 판다는 종전의 방법으로는더 이상 경쟁하기 힘들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중국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 공장을 설립해 생산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의 업체들은 OEM조달자의 희망에 맞추어 제품의 설계에서 제조에 이르기까지를 일관해서 맡는 "오리지널 디자인 매뉴팩처링(ODM)"이란 말을 강조한 다. ODM에는 단순한 OEM기업에는 없는 PC에 정통한 고급기술력과 최신정보를 항상 입수하는 정보수집력이 불가결하다. 이때문에 대만업체내에서는 미국에 가지고 있는 인맥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같은 기술자들은 대만과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 하고 있다.

생산력과 기술력의 향상을 배경으로 대만업체가 PC와 관련된 규격작성에 나서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예를들어 PC와 주변기기를 접속하기위한 버스중 VL버스 는 대만업체들이 중심이되어 만든 규격이다.

지난 90년부터 91년에 걸친 부진한 시절을 계기로 대만의 주요PC업체들은 대담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들 업체는 기존에 대만업체들이 가지고 있던 특징 중의 하나인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더욱 강화했다는 점과 소비자들에게 좀더가까히 접근해 변화에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생산체제의 개편、 그리고 미국과의 밀접한 교류 등을 통해 대만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고 있다.

<주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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