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조찬회 형식으로 열리며 과학기술처 장.차관이 반드시 참석해 자문을 받는 과학기술정책협의회가 있는 12월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동지를 며칠 앞둔 때라 차의 전조등을 켜도 앞이 어둡고 또 추워서 도로가 살짝 얼어붙은 아침이었다. 의제는 과학기술처가 마련한 "과학기술 부문 세계화의전략과제 라 내 나름대로 세계화의 의미를 되씹어 보며 차를 운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로터리를 끼고 좌회전을 하는 곳에서 앞의 어느 차가 급정거를 했는지 내 바로 앞차가 서는 바람에 나도 브레이크를 급히 밟았는데, 그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뒤차가 미끄러지면서 내 차를 추돌하고 말았다. 몸이 한번 크게 앞뒤로 흔들렸으나 회전 차량이 많은 곳이라 우선 교통의 흐름을막지 않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뒤차에 신호를 주면서 길 옆으로 차를 정차 시키면 뒤차도 으레 따라오리라 했는데, 웬걸 그대로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피해를 입은 나는 길옆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되고--. 이 일은 교통이 막히더라도 현장에서 내려 뒤차 운전자와 차번호를 확인한 후에 차를 빼지않은 어리석음을 되씹기보다는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를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언론매체를 통해 세계화에 관한 논의가 거듭되고 있지만 나는 세계화 방향에는 이중성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하나는 외향적인 것으로서 한국이 세계 경쟁무대에 진출해 떳떳이 행세하는 것이었다. 이에는 국가경쟁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 등이 중요하며, 또 지금까지 정부와 사회가 생각하는 성장 일변도의 개발우선주의와 성격이 일치 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화의 방향이다.
세계화의 또 하나의 방향은 내향성이다. 한국이 세계로, 한국인이 세계 무대 로 진출하려면 우리도 문을 활짝 열어 세계가 한국으로, 세계 사람들이 한국 에 오도록 포용하는 것도 세계화이다. 지난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구호 중의하나인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와 맥락을 같이한다.
외향적 세계화의 원동력이 국가경쟁력이라면 세계인을 포용할 수 있는 내향 적 세계화의 근본 조건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한국 국민의 도덕성이라고 본다. 그리고 한국의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한 도덕성의 확립이 결국 내향적 세계화뿐만 아니라 외향적인 세계화에도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세계에 진출하여 신용과 신뢰, 예의를 창출하는 도덕성이 결여된 한국인이라면 세계 무대에 진출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최근 도덕성이 무너져 내리는 예를 여러 번 경험했다. 성수대교의 가운데 토막이 떨어져 내린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술에 도덕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94년은 부실시공 추방의 해"라고 공사장마 다 써 붙여 놓았는데, 이전까지는 부실 시공을 해 왔음을 시인하는 정직성은 좋지만 구호에만 그친다면, 앞으로는 모르고 지은 죄가 아니라 알고 짓는 죄라 더 큰 책임을 져야 될 것이다. 또 부실 시공을 알고 있는 이는 경영자, 기술자, 납품업자, 또 근로자들을 합해 우리들 모두이다. 누가 감히 누구를손가락질 할 수도 없는 우리의 도덕 수준이다.
한강 다리가 하나 끊어지자 뒤늦게나마 다른 다리도 수리를 하기 시작해서이제는 강을 건너는 데 하루의 귀중한 시간을 거의 뺏기게 되었다. 교통 혼잡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 대수가 늘고 도로율이 낮아서 교통 혼잡이 생기 는 것일까.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첫눈에 띄는 것은 교통 혼잡보다는 교통질서이다. 교통질서를 지키지 못하고는 세계인이 될 수 없으며, 교통질서를 지키지 못함은 우리의 심성에 도덕존중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화의 목표로 G7 국가 수준을 지향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세계 3위(G3수준), 자동차 생산은 G5, 조강 생산은 G6, 전화통신 설비는 G8, GNP 는 G12인 것이 외향적 세계화의 수준이다. 그러나 인구당 교통사고 사망자수 G4, 과학기술 논문발표 건수 G27, 여성경제활동 참여율 G79, 그외 세계화의 비교치는 없지만 93년 한 해 기아가 3천2백24명, 해외 입양 2천2백90명, 전철무임승차 연 3백만명, 탈세율 15.8%인 것이 내향적 세계화의 수준이다.
정부의 각 부처는 세계화전략을 세우느라 부산한 것으로 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외향적 세계화는 좀더 자율에 맡기고 내향적 세계화에 정부가 더 신경을 써달라는 것이다. 대문밖을 나서기 전에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거울에 비춰보듯이 도덕성에 바탕을 둔 내향적 세계화 없이는 우리는 아마 영원한 중진국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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