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출연연 "고용안정" 급하다

"정치하는 사람과 경제하는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경제적으로 베풀 수 있는최대의 선은 백성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말은 캠브리 지대학의 교수였던 고 조안 로빈슨여사가 경제학자에게 남겨준 경구다. 연구 하는 사람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데 있어서, 안정된 일자리와 믿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애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국내외 경제사회동향은 그 반대다. 이른바 무한경쟁시대의 효율추구가 빚어내는 비인간화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효율추구적 조직감축과 인력재배치를 거부할 수도 없다.불가피한시대의흐름이기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지난해 12월3일에 시작된 정부조직 대개편의 회오리가 그 시작이다. 이제는 정부출연연구소도 그 회오리바람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정부 출연연구소로서는 1980년에 이어 두번째의 일이다. 그러나 정부출 연연구소의 정비내용과 방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다만 그 개연성이 높기때문에 불확실성이 높고 일자리에대한불안감이고조되고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것"처럼 1980년의 연구소 축소개편과 연구원 감축, 그리고 지위격하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부에 그치는 일이겠으나 연구원들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아 힘들며 좌불안석이다.

반대로 연구원들과 일반직원간 또는 경쟁적인 연구원 서로간에는 반목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네가 나가지 않으면 내가 나가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참으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조직 효율화 필요성으로 보면 정부출연연구소라고 해서예외일 수 없다.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관리의 틈이 있다면 정부출연연구소라 고 해서 결코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정부기구와 조직도 그렇지만 정부출연 연구소의 장기적인 불안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적어도 다음몇가지 점을 유의해서 조속히 안정시키기 바란다.

첫째로 세계화와 가격파괴과정에서는 다른 상품과 함께 거의 모든 노동도 1차 상품처럼 동질화하나, 연구노동만은 천차만별로 차별화된 채 남아 있을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으로 보면 이 연구원이 저 연구원과 같아 보여서 연구원을 대체해도 효율이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연구 노동만은 차별성이 강해서 이 연구원을 저 연구원으로 바꿔서 연구시킬 때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의 성과가 없거나 연구테마의 현실필요성 과 시대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전체적인 연구성과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연구소가 다소 방만하게 관리되고 연구원 수가 넘친다고 해서 반드시 낭비적 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연구는 단기효율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장기효율적 인 성과를 지향해야 하며 이에 기초해서 조직과 인원정비방침을 결정하기 바란다. 둘째로 연구분야와 연구원의 역할이 대체할 수 없는 이질화성격을 지니는 데다가 모두 고도의 지적(정보)노동이기 때문에 조직과 연구원의 정서적 불안 은 절대효율을 저하시키게 된다. 그 때문에 각국은 전쟁중에도 연구소와 연구원에게는 그 지위와 생활을 보장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최대한의 자유 를 보장해 왔다.

더구나 고용불안과 동료간의 갈등요인을 누적.장기화시키는 것은 연구효율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는 요소다. 조직과 인원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면 최소한으로 좁혀 빠른 시일안에 완료해야 한다.

셋째로 연구개발투자는 그 성과를 일대일로 평가하는 효율측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균적인 사회경제발전 및 학문과 과학기술수준이 높아질 때 특정의 연구개발성과도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비록 조그마한 산업기술도 알고보면 관련된 다른 분야의 지적축적과 기술발전이 연계되고 누적된 결과이다.

연구개발이야말로시너지효과가 절대적인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은 처음부터 성과가 없다고 해서 너무 성급하게 낭비적인 것으로평가해서는 안된다.

무한경쟁시대일수록 국가경쟁력을 떠받치는 동력(동역)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연구원의 고용안정을 통해서 연구원 스스로 연구가 좋아서 연구하고 실험할 때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국가관리의 재설계(redes ign reengineering)와 재구축(restructuring)이 절박할수록 과학기술연구원 의 안정된 생활기반을 구축해 주는 것을 선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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