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고 말한다면 스위칭 모드 파워 서플라이(SMPS)는" 전자기기의 쌀"이라 말할 수 있다.
SMPS는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기를 각종 전자기기의 조건에 맞도록 변환시켜 주는 장치로 기본적으로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기에 꼭 필요 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전기에는 질이 있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1백10V, 2백20V의 전기는 항상규 정된 전압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발전소에서 수용가에 이르는 동안 전력량변화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전압, 즉 전기의 질은 수시로 바뀐다. 어떤 때는1 백10V로 들어와야 할 것이 1백V로 낮게 공급되고 어떤 때는 2백20V가 2백40V 로 높게 공급되기도 한다.
물론 정격 전압을 사용하는 전자제품은 이같은 변화에 곧바로 이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규칙한 전력공급은 전자기기 고장의 원인이 되고 성능저하의 요인이 된다. 이런 일은 우리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에 서 사가지고 들어왔던 헤어드라이어나 주방용 기기가 쉽게 고장을 일으키는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전기의 질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기의질 때문에 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대개의 경우 사소하다. 그러나 산업계의 입장에서 보면 영향은 엄청나게 커진다. 수십~수백억원의 초정 밀 장비, 컴퓨터, 통신기기, 항공우주기기등이 전기의 질때문에 제 성능을발 휘하지 못하거나 이상이 발생하면 큰 일이다.
SMPS는 그것을 사전에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SMPS를 전자기기의 쌀이라고부를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SMPS시장은 올들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전반적인 세트 경기의 호조가 큰 힘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컴퓨터 경기가 최대호황 을 맞으면서 SMPS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 팩시밀리나 복사기등 사무자동화 기기 역시 기업용에서 개인용제품까지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SMPS 호황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문으로 여겨졌던 가전분야에서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VCR나 8mm캠코더등에도 장착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노래방기기 수요는 올 한해 SMPS업계에 전혀 예기치 않았던 짭짤한 수입을안겨주었다. 대부분의 노래방들이 신세대 기호에 맞도록 2~4년 지난 구식 시스템을 신제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체수요가 급증했다.
SMPS의 국내 시장규모는 약 3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2천6백억원수준을 기록했던 지난해에 비해 4백억원가량이 증가한 것이다.
시장이 다변화되고 사업영역이 확대되면서 업계의 제품개발도 매우 활발해졌다. 주력 및 유망품목도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SMPS 최대시장은 데스크톱 PC부문이었다. 이것이 노트북 의 가세로 점차 변화했다. PC의 내수분야는 아직 데스크톱 제품이 우세하지 만 수출은 노트북 PC가 완전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변화에 발맞춰 SMPS업체들도 크기는 보다 작으면서도 성능은 뛰어난 노트북용 제품개발 에 앞다퉈 나섰다.
노트북용 제품의 새로운 부각은 시장환경 이외에도 대만이라는 외부변수가적 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일반부품과 마찬가지로 대만은 국내 PC관련부품의 상당량을 공급한다. 이들이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에 현지공장을 세우고 이를 한국시장에 들이밀었다. 아스텍.하이동으로 대표되는 대만업체들은 데스크톱 PC용 SMPS를 개당 17달러선에 공급했다. 국내업체들의 공급가가 대략 28달러선인 것에 비하 면 엄청나게 낮은 가격이다.
내수나 수출을 막론하고 "가격파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PC시장에서 국산제품은 자연히 설 땅을 잃어버렸다. 상당수의 국내업체들이 데스크톱시장을 포기하고 노트북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컴퓨터시장 에서는 노트북시장이 주력시장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실제로 486제품생산에 주력하던 베스트기전이 지난 6월 데스크톱용 SMPS사업 을 포기했고 삼성전기도 생산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이에 앞서 을지, 마이텍 등도 데스크톱 시장 포기 선언을 했다. 이들은 모두 노트북이나 산업용시장 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탓인지 노트북용 시장은 올해 전체시장의 30%가 넘는 1천억원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업체들의 생산 경쟁력확보 노력은 자동화장비의 도입 활성화에서부터 시작됐다. 자동화 장비는 대부분 제품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테스트장비 에 집중됐다. 세트업계가 지적하는 국산 SMPS의 최대약점중 하나가 신뢰성이 었다. 부품 불량률이 높으면 세트에까지 치명타를 가할 수 있고 부품업체 자체로서도 수율은 경상이익과 직결된다.
산업용 전문업체인 화인썬트로닉스는 3억원을 투자, 인쇄회로기판(PCB)과 완제품 성능을 검사할 수 있는 테스트 장비를 구입했다. 을지는 EMI검사를 강화하기 위해 1억원을 들여 EMI검사실을 설치하고 대당 5천만원짜리 자동검사 기 2대를 구입했다. 마이텍전자는 총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성품의 내구성 시험용 버닝룸을 구축하고 PCB검사장비를 갖추었다. 베스트기전 역시 관련장비 도입에 4억원을 쏟아부었다. 이같은 과감한 투자는 올해 SMPS업계의 개발 생산품목 다양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업영역이 다각화되면서 자연히 업계의 분야별 전문화도 재촉되고 있다. 그간 50여 업체가 난립, 뚜렷한 특화기술이나 제품없이 "돈 되는" 종목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현상이 조금씩은 사라지고 있다. 저마다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목표시장을 설정하고 집중 공략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되고 있다.
통신기기부문은 동아전기가, 산업용은 화인썬트로닉스, 디에치엠등이 대표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컴퓨터부문에서는 베스트기전, 을지를인수한 일산전자, 마이텍등이 가장 앞서고 있다. 행성사.서신전자.삼의전자등 은 가전부문의 선두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전문분야에 투자를 집중, 노하우 축적은 물론 수출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AT&T가 손을 들 정도로 통신분야의 독보적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동아전기는 이제 항공 우주관련 고신뢰성 제품에까지 개발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회사는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인도로부터 기술이전을 요청받고 기술전수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베스트기전등 컴퓨터 전문업체들은 486노 트북은 물론 펜티엄등 차세대 PC와 중형컴퓨터용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물론 시장이 팽창하고 업계의 투자와 전문성이 제고된다고 해서 국내 SMPS산 업의 앞날이 장미빛으로 채색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 현실"속에서 부품이 갖고 있는 속성이 SMPS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취약한 기술력, 영세 한 자본, 업체 난립과 과당경쟁, 고급인력의 외면, 정부의 지원정책 부재등 이 고스란히 SMPS업계에 숙제로 떠맡겨져 있다.
국내 SMPS산업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산업 역사가 20여년 에 이르면 기린아라고 할 수 있는 스타 업체들이 탄생하게 된다. 쉽게 말해 돈을 벌어들인 전문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SMPS의 중요도를감안하면 이같은 기대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내의 경우는 SMPS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기업은 20년 동안 동아전기가 유일하다는 평이다. 그나마 통신기기 분야에서 이 회사의독 점적 기술력과 개발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도산과 재기를 반복하고 명맥을 유지한다 해도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축적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SMPS는 업체 스스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 범용상품으로 공급하는 것도어렵다. 세트에 맞춰 그들의 주문대로 개발해준다. 이 때문에 최대업체인 동아전기의 경우 한해에 1백50여개에 이르는 각종 제품을 개발한다.
업계의 분석으로는 통산 10개의 SMPS를 개발할 경우 양산에 돌입해 수익을올 리는 제품은 1~2개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8~9개 제품은 개발비만 날리고 그대로 사장된다. 재고로 처리할 수도 없다. 특정세트에 규격화된 특정부품 이기 때문이다. 히트상품 하나로 나머지 결손부분을 모두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세트업체가 곧바로 복수공급선을 원하게 되고가격입찰을 실시하기도 한다. 원개발업체로서는 수익은 커녕 자칫 "남 좋은일만해주는 꼴"이 되기 쉽다.
한해 매출액 1백50억원이 넘는 업체라야 외국기업을 포함해 3개사에 불과한형편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자본력으로 수익성이 부족하니 재투자는 물론 종업원 복지는 엄두도 못내게 된다. 뛰어난 전문기술인력을 붙잡아 둘 이점이 전혀 없다. 쓸만한 인물은 전직해버린다. 빈곤과 영세성의 악순환 고리가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현실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현재의 SMPS업계가 자생력을 갖출 수있도록 옆에서 부축해주는 정부의 역할도 별로 없다. 정부는 재벌기업들이참 여하는 대형 프로젝트에는 수천억원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하지만 전자산업 의 기초로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SMPS업계를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외제 수입품을 견제하기위 해 업계가 청원하고 있는 수입선다변화품목마저도 부처간 이견으로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원의지를 보이고 업계의 기술개발의욕이 살아 있다면 국내 SMPS산 업기반은 튼튼해질 것이다. 지금은 업계가 너무 외롭게 뛰고 있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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