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수출될 반도체 제조용 불산 물량 일부를 승인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불산은 최근 원료 공급이 줄면서 수급이 빠듯해지는 등 공급난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수출에 제동을 걸자 한국 반도체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본지 10월 26일자 1면 참조>
업계는 일본 정부가 불산 수출 승인을 거부한 배경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 A사의 불산 수출 건이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A사의 불산은 한국에 수출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에 공급될 물량이었다.
불산은 전략물자로 분류돼 수출·수입을 위해서는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건당 사용량부터 공급처까지 상세한 내용을 당국에 보고한 뒤 승인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한국으로 불산을 수출하기 위해 일본 내에서 신청한 승인 건이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수출 승인을 거부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신청 서류상의 미비와 같은 행정상의 문제나 이전 수출 건에서 사후 문제가 발견돼 승인이 나지 않는 등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A사의 불승인 건이 민감한 건 국내 불산 수급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업계는 불산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빠듯하던 불산 수급이 올해 들어와 악화되면서 불산 가격이 많게는 50% 가까이 상승했다.
불산은 반도체 웨이퍼 세척에 사용된다. 금이나 백금을 제외한 금속 대부분을 녹일 정도로 부식성이 강해 실리콘 웨이퍼 불순물 제거에 활용된다. 불산 부족은 곧 반도체 제조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공급 및 재고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입 과정에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김에 따라 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구매팀은 이번 수출 승인 거부 사태가 빚어지자 국내 다른 불산 수입업체에 재고량을 문의하는 등 재고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용 불산은 높은 순도가 필요해 스텔라, 모리타 같은 일본 기업이 독점·생산하는 물질이다. 이들이 공급을 중단할 경우 국내 반도체 공장은 가동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부 업체에서 수입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알고 있지만 현재 반도체 생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