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상업화 연구를 책임져야 할 전문생산기술연구소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출연연구기관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제자리를 못 찾는 가운데 이렇다 할 정부의 육성전략도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4일 산업기술계에 따르면 국내 14개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이하 전문연)가 제 역할을 못하고 표류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초·원천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출연연과 사업화를 수행하는 기업 사이에서 제 몫을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연은 중소기업자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소기업자 외의 주체가 공동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허가를 받아 업종별 또는 기능별로 설립하는 연구소다. 총 17곳이 설립허가를 받아 현재 14개 전문연이 운영되고 있다.
전문연은 출연연과 기업 사이에서 산업기술 실용화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최근 정부가 연구개발(R&D) 사업화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출연연에도 실용화·사업화 기능이 강조되다 보니 산업기술연구회 소관 14개 출연연과 전문연의 영역이 겹치기 시작했다. 출연연에 비해 재정과 인력 규모가 취약한 전문연은 자연스레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14개 전문연의 평균 예산은 328억원으로 산업기술 14개 출연연 평균 예산 1555억원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연별 편차도 심하다. 규모가 큰 편인 자동차부품연구원, 전자부품연구원, 한국광기술원을 제외하면 평균 예산은 145억원대로 크게 낮아진다.
일부 전문연에는 국고보조금이 지원되지만 겨우 30억원 남짓한 규모다. 나머지 예산은 자체적으로 사업을 수주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 방식으로 조달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건강한 생태계 구현 차원에서 중소기업 R&D 지원 비중을 높여가는 것도 전문연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정부 R&D 과제를 수주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문연이 출연연과 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셈이다. 사회적 관심이 낮다 보니 전문연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도 없다.
일각에서는 전문연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실패해 현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앞다퉈 전문연을 찾아와 개발을 의뢰할 정도의 기술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평이다.
산업기술계 관계자는 “출연연이 실용화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정부는 중소기업 R&D 지원 비중을 높이는 상황에서 전문연의 위상과 역할이 흔들리고 있다”며 “당초 취지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윤성혁 산업기술시장과장은 “전문연발전협의체 구성 및 전문연 발전 방안 등을 검토해 하반기 발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연과 출연연 현황 비교
자료:산업기술계 취합, 산업통상자원부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