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로봇 투자와 지역 제조업 기반 결합···연구개발부터 실증·양산까지 산업화 체계 구축
차세대 반도체·자율비행로봇·농업로봇·스마트물류 등 5대 핵심사업 추진···2027년 국가예산 확보가 관건

전북특별자치도(도지사 이원택)가 총 1조3000억원 규모의 5대 핵심사업을 앞세워 대한민국 피지컬 인공지능(AI)·로봇 산업의 국가거점 구축에 나섰다. 기존 제조업과 농생명 산업 기반에 새만금 로봇 투자, 차세대 반도체 기술, 자율주행·자율비행 로봇을 결합해 연구개발부터 실증, 생산, 사업화까지 연결하는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전략의 핵심은 단순한 첨단산업 유치가 아니라 전북이 보유한 산업 현장을 피지컬 AI 기술의 실증 무대로 활용하고, 이를 새로운 제조업 성장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새만금 로봇 투자계획과 연계해 로봇 생산과 활용 시장을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전북을 국내 피지컬 AI 산업화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전북도는 지난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피지컬AI·로봇 글로벌 최강국 전북 대토론회'를 통해 이 같은 청사진을 공개했다. 지역 국회의원과 정부·산업계·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5대 핵심사업의 추진 방향과 2027년 국가예산 확보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제조·농생명 산업 기반, 피지컬 AI 실증 거점으로 전환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의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한 뒤 로봇이나 기계장치를 통해 직접 행동하는 기술이다. 기존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이미지 등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면, 피지컬 AI는 공장과 물류센터, 농업 현장 등 물리적 공간에서 실제 작업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산업적 파급력도 크다. 제조업에서는 생산설비의 자율 운영과 품질관리, 물류 분야에서는 다중 로봇 협업을 통한 자동화, 농업에서는 파종·재배·수확 과정의 무인화와 지능화 등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피지컬 AI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기술개발뿐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확보하는 데이터와 반복적인 실증 경험이다. 로봇이 복잡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작업 조건과 예외 상황을 학습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북은 상용차와 농기계 중심의 제조업 기반, 농생명 산업 현장, 새만금의 산업용지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특히 농업과 제조업은 로봇의 실제 활용 수요가 존재하는 분야인 만큼 기술개발과 시장 창출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평가다.
전북도가 구상하는 산업생태계는 '현장 데이터 확보→AI 기술개발→로봇 실증→제품 고도화→양산 및 시장 확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산업 현장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AI 학습과 로봇 성능 개선에 활용하고, 검증된 기술을 다시 제조·농업·물류 현장에 적용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연구개발 중심의 산업 육성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수요와 사업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산업 기반을 조성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1조3000억원 규모 5대 사업···반도체부터 농업·물류로 확장
전북도가 제시한 5대 핵심사업은 피지컬 AI 산업을 구성하는 핵심 기술과 실제 활용 분야를 포괄한다.
우선 'K-고대역폭메모리(HBM)-고대역폭플래시(HBF) 제품기술 개발센터'는 차세대 메모리 제품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AI와 로봇의 고도화에 따라 데이터 처리와 저장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관련 반도체 기술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로봇이 센서와 카메라 등으로 수집하는 대규모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활용하려면 고성능 연산과 효율적인 메모리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북은 관련 제품기술 개발 기반을 마련해 피지컬 AI 산업과 반도체 분야의 연계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피지컬 AI 기반 자율비행로봇(AAR) 국가산업 클러스터'는 자율항공로봇 기술의 개발과 실증, 운항 지원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자율비행 기술은 산업시설 점검과 농업 관측, 물류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이 확장될 수 있어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의 집적 효과가 기대된다.
'새만금 로봇 팜 팩토리'는 전북의 농생명 산업 기반을 피지컬 AI와 결합하는 대표 사업이다. 농업 현장에서 활용할 로봇을 제작하고 학습·실증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농업 자동화 기술의 상용화를 촉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농업은 작업 환경이 일정하지 않고 기상 조건과 작물 상태에 따라 로봇의 판단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따라서 실제 농업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반복적인 실증이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북은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농업로봇 기술의 개발과 검증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피지컬 AI 로봇 밸류체인 벤처 지원'은 기술개발 성과를 기업 성장과 사업화로 연결하기 위한 사업이다. 로봇 산업은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제어기술, 시스템 통합 등 다양한 기업이 협력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소·벤처기업의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고 로봇 산업의 공급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대기업 투자와 지역 중소기업의 기술 역량을 연결하는 협력체계가 구축된다면 지역 산업 전반으로 투자 효과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피지컬 AI 자율형 통합물류 국가 실증센터'는 여러 로봇이 협력해 물류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을 검증하고 사업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물류 현장은 로봇의 이동과 작업 배분, 충돌 회피, 실시간 운영 최적화 등 피지컬 AI의 핵심 기술을 종합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분야다.
전북도는 이들 사업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와 로봇 기술개발, 제조·농업 현장 실증, 벤처기업 육성, 물류 자동화로 이어지는 산업 가치사슬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새만금 로봇 투자와 연계···생산·실증 동시 확보
이번 구상에서 주목할 부분은 현대자동차의 새만금 로봇 투자계획과 전북의 산업 기반을 연계하려는 전략이다. 피지컬 AI 산업이 성장하려면 기술개발 역량과 함께 실제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 기반, 기술을 검증할 산업 현장, 제품을 구매하고 활용할 수요처가 필요하다.
전북도는 새만금 로봇 투자와 로봇·부품 위탁생산 기반 구축을 지역 산업생태계 확대의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상용차와 농기계 산업에서 축적된 기계·부품 제조 역량은 로봇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된다. 정밀기계와 구동장치, 제어시스템 등 기존 제조업의 기술 역량을 로봇 부품과 시스템 분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농생명 산업과 물류 현장을 실증 공간으로 활용하면 로봇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업과 실제 로봇을 사용하는 기업 간 협력도 가능해진다. 다만 투자계획이 지역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투자 실행과 함께 지역 기업의 공급망 참여, 기술 협력, 전문인력 양성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규모 투자 자체보다 지역 중소기업이 로봇 산업의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분야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가 산업생태계 조성의 실질적인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2027년 국가예산 확보가 첫 관문···사업 간 연계·차별화 중요
전북도의 피지컬 AI 국가거점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과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번 국회 토론회에서 2027년 국가예산 반영과 관계부처 협업체계 구축이 핵심 의제로 다뤄진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피지컬 AI 산업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로봇, 제조업, 농업, 물류 등 다양한 산업 분야가 결합하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개별 사업의 예산 확보뿐 아니라 부처별 정책과 연구개발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협력체계가 중요하다.
특히 5대 핵심사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각 사업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중복 투자를 최소화해야 한다. 차세대 메모리 기술과 로봇 연구개발, 농업·물류 실증사업이 실제 산업 가치사슬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인력 확보 역시 주요 과제다. 피지컬 AI는 AI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로봇공학과 기계설계, 센서, 제어, 통신 등 복합적인 기술 역량을 요구한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참여하는 산학연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연구개발 인력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실증 이후의 상용화 전략도 중요하다. 국가 재정으로 구축한 연구개발·실증 인프라가 실제 기업 매출과 투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산업거점 조성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술 실증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민간기업의 투자와 시장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사업화 체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지역 산업 고도화 넘어 국가 피지컬 AI 경쟁력 확보 시험대
전북도의 이번 전략은 지역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의 피지컬 AI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AI 산업 육성이 데이터센터와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 디지털 기술 기반에 집중됐다면, 피지컬 AI는 실제 제조·농업·물류 현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전북이 강점을 가진 농생명 산업과 상용차·농기계 제조업은 피지컬 AI 기술의 실증과 사업화가 가능한 분야다. 기존 산업을 첨단기술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기업과 인재를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기대된다.
다만 피지컬 AI 국가거점의 경쟁력은 투자 규모나 인프라 구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확보한 데이터가 기술개발로 연결되고, 개발된 로봇이 상용화돼 국내외 시장으로 확산되는 산업생태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전북도가 추진하는 1조3000억원 규모의 5대 핵심사업은 이러한 산업화 모델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원택 전북도지사는 “전북의 제조·농생명 현장과 새만금 로봇 투자를 하나로 엮어 기술개발에서 실증, 생산까지 이어지는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며 “전북이 기업과 인재가 모여드는 피지컬 AI 국가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 시군, 정치권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결국 전북의 피지컬 AI 전략이 성공하려면 2027년 국가예산 확보를 출발점으로 대기업 투자, 지역 제조업 전환, 중소·벤처기업 육성, 현장 실증을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전북이 단순한 로봇 생산기지를 넘어 기술개발과 실증, 사업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피지컬 AI 국가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