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AI를 쉽고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AI 네이티브 HIS의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연결된 AI들이 환자 정보와 업무의 맥락을 이어받아 실제 병원 업무를 돕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 AI 기업과 HIS 기업, 의료기관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어떤 업무에서 AI를 활용하고 그 결과를 다음 업무로 어떻게 이어갈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AI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업무의 변화다
진료 중 AI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화면을 열어 환자를 다시 검색하고 필요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AI가 생성한 결과를 다시 HIS에 옮겨 적어야 한다면 의료진은 AI를 활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AI가 정확한 결과를 내놓더라도 사용하는 과정이 번거롭다면 업무 부담을 충분히 줄이기 어렵다.
의료 IT 평가기관 KLAS는 2026년 보고서에서 미국 의료정보시스템 기업 에픽(Epic)의 전자건강기록(EHR)을 사용하는 12개 의료기관 의료진의 AI 활용 경험을 분석했다.
AI 도구를 하나 이상 사용하는 의료진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의료진보다 'EHR이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7%포인트(P) 높았다. 다만 사용하는 AI 도구가 많아질수록 높아지던 EHR 만족도는 일정 수준 이후 정체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초기 도입 기관의 경험을 분석한 결과로 AI 사용과 만족도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지만, AI를 더 많이 도입한다고 해서 사용 경험이 계속 좋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AI 네이티브 HIS에서 중요한 것은 도입한 AI 개수가 아니라 실제 업무의 개선이다. 불필요한 입력과 확인이 줄었는지, 필요한 정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는지, 현장의 업무 부담이 실제로 줄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모든 AI를 한 회사가 만들 수는 없다
진료기록을 작성하는 AI와 검사 결과를 분석하는 AI, 약제 사용을 검토하는 AI와 환자에게 설명하는 AI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다르다. 필요한 전문성과 학습 데이터, 검증 과정도 다르다. HIS 기업이 모든 분야의 AI를 직접 개발하고 항상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AI를 직접 보유하려 하기보다 각 분야의 전문 기업과 협력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AI 기업은 특정 문제를 깊이 해결하고, HIS 기업은 이를 환자 정보와 병원 업무에 맞게 통합하며, 의료기관은 실제 현장에서 유용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HIS 기업의 역할이 단순한 연결 대행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AI가 어떤 업무와 상황에서 작동할지 설계하는 책임이 커진다.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고 결과를 어디에서 확인하며, 다음 업무로 어떻게 이어갈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전문 AI 솔루션들은 HIS 주변의 독립된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필요한 순간에 해당 환자의 정보와 업무 맥락을 이어받아 기존 업무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것이 AI 네이티브 HIS가 갖춰야 할 중요한 요건이다.
◇여러 기업의 기술을 하나의 업무 흐름으로
외래 진료를 예로 들어보자. 진료 전에는 HIS의 환자 목록에서 과거 기록과 최근 검사 결과를 AI가 정리해 보여줄 수 있다. 진료 중에는 의료진과 환자의 대화를 바탕으로 기록 초안을 만들고 약제를 검토할 때는 관련 정보를 분석해 제시할 수 있다. 진료가 끝난 뒤에는 환자 설명 자료의 초안을 만들 수도 있다.
같은 원칙은 간호, 검사, 원무 등 진료실 밖의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각 AI가 필요한 정보를 HIS에서 전달받고, 결과도 담당자가 일하던 업무 흐름 안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각각의 AI를 서로 다른 기업이 개발하더라도 사용자가 같은 환자를 다시 선택하거나 동일한 정보를 반복 입력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앞선 업무의 정보가 다음 업무로 이어지고, AI의 결과는 의료진이나 담당자의 확인을 거쳐 기록과 후속 업무에 반영돼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AI 메뉴를 HIS 안에 여러 개 추가하는 것과 다르다. 어떤 순간에 어떤 AI가 작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무엇은 사용자가 요청할 때 제시할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여러 AI가 비슷하거나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을 경우 이를 어떻게 정리할지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같은 주의사항을 여러 AI가 반복해서 알린다면 중복을 줄여야 한다. 서로 다른 판단을 제시한다면 근거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각 AI의 결과를 찾아다니며 직접 맞춰 보는 일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
◇앰비언트 AI가 보여준 업무 흐름의 변화
AI가 기존 업무를 지원할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앰비언트 AI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의료진과 환자의 진료 대화를 바탕으로 기록 초안을 작성하는 AI다.
2025년 'JAMA Network Open'에 발표된 연구는 미국 6개 의료기관 그룹의 외래 의료진 263명을 대상으로 AI 기록 도구 사용 전후의 경험을 분석했다. 연구진이 참여자와 기관의 차이를 고려해 추정한 번아웃 비율은 30일 사용 전 51.9%에서 사용 후 38.8%로 낮아졌다. 또 진료기록 작성에 따른 인지적 부담과 근무시간 이후의 문서 작성 부담도 함께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의료진은 환자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기록 초안을 확인하고 수정했으며, 결과는 기존 진료기록으로 이어졌다. AI가 별도 업무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기존 기록 업무 안에서 작동한 것이다.
이 연구는 대조군 없이 사용 전후를 비교했기 때문에 관찰된 변화를 모두 AI의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AI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정확도뿐 아니라 기록 부담과 업무 경험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 AI 기업과 HIS 기업이 협력할 때도 같은 관점이 필요하다. 개별 AI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넘어, 실제 업무에 들어왔을 때 사용자의 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협업은 계속돼야 한다, AI 도입 후에도
이러한 변화를 만들려면 협업의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느 회사의 AI를 붙일까'보다 '어느 업무의 어떤 불편을 줄일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그 문제에 적합한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
AI 기업과 HIS 기업, 의료기관은 도입 전에 개선하려는 업무와 평가 기준을 함께 정해야 한다.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누가 확인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도입 후에는 현장의 경험이 다시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AI 기업은 오류와 한계를 보완하고, HIS 기업은 정보 전달과 화면·업무 연결 방식을 조정하며, 의료기관은 실제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해야 한다.
성과도 호출 횟수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업무 처리 시간이 줄었는지, 반복 입력과 확인이 감소했는지, 사용자가 계속 활용하는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면 AI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HIS와의 통합 방식과 업무 설계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기술적 연결을 넘어 업무의 통합으로
전문 기업의 AI를 함께 활용한다는 것은 기능을 단순히 묶어 제공하는 일이 아니다. AI의 종류나 공급 기업이 달라도 사용자는 일관된 방식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업무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지난 4편에서 설명한 AI 커넥터와 상호운용성이 다양한 AI를 연결하기 위한 기술적 기반이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연결된 AI가 실제 병원 업무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문 AI 기업과 HIS 기업, 의료기관의 협업은 기술적 연결을 현장에서 체감하는 업무의 변화로 이어주는 과정이다.
결국 AI 네이티브 HIS는 AI 기능을 많이 탑재한 HIS가 아니다. 다양한 전문 AI가 환자 정보와 HIS의 업무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의료진과 직원이 각각의 AI를 사용하기 위해 같은 정보를 다시 입력하고 그 결과까지 직접 이어 붙여야 한다면, AI를 연결했을 뿐 병원 업무에 통합한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AI는 또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용자가 따로 찾아가 정보를 입력하고 결과를 옮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기존 HIS의 업무 안에서 필요한 일을 돕는 기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AI를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떠안게 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현장의 일을 덜어주도록 만드는 것이 협업의 목표다.
앞으로 HIS 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AI를 직접 보유했는가보다, 전문 AI 기업의 다양한 솔루션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하나의 업무 흐름으로 통합하는가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 성과는 궁극적으로 병원 업무의 부담을 줄이고 의료진이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기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지케어텍 사업총괄 겸임 strategy@ezcaretech.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