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디지털 금융 새로운 과제, 트러스트 프레임워크

금융은 결국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산업이다

은행의 예금과 지급결제부터 증권의 발행과 거래, 자산의 보관과 권리 이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금융활동은 거래 상대방과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동안 이러한 신뢰는 금융기관의 내부통제와 법적 책임, 금융당국의 감독체계를 통해 유지돼 왔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 실물자산 토큰화(RWA) 등 새로운 디지털 금융이 확산되면서 신뢰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기존 금융거래는 개별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계좌와 원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기관 간 거래 역시 정해진 금융망과 표준화된 절차를 통해 처리됐다. 반면 디지털 자산은 서로 다른 플랫폼과 분산원장을 통해 발행·유통될 수 있고, 거래에 참여하는 주체도 금융기관을 넘어 기술기업과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금융서비스의 연결 범위가 넓어지고 거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각 기관이 관리하는 정보와 거래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부각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트러스트 프레임워크(Trust Framework)'다.

기술적 검증만으로는 금융 신뢰가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은행은 2026년 발간한 '디지털 월렛:트러스트 프레임워크' 보고서에서 디지털 지갑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안전성뿐 아니라 참여기관의 역할과 책임, 공통 표준, 규정 준수 및 법적 효력을 포괄하는 신뢰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디지털 지갑에 담긴 신원정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해당 정보가 암호기술을 통해 위변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그 정보가 처음부터 정확하게 발급됐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원 확인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면 기술적으로 유효한 정보라도 신뢰하기 어렵다. 결국 디지털 환경에서의 신뢰는 기술적 검증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생성과 관리에 대한 제도적 책임이 함께 작동할 때 확보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디지털 자산을 다루는 금융시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의 무결성과 이력을 확인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그 기록의 기초가 되는 자산과 권리, 거래조건까지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원천 정보의 정확성과 거래 과정의 적법성, 권리 이전의 유효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역시 토큰화 금융의 발전 과정에서 상호운용성과 시장의 분절, 운영위험 등을 주요 과제로 다루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참여기관들이 공통의 기준에 따라 거래를 확인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신뢰체계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장에 기록된 사실과 그 근거는 다르다

국내 토큰증권 시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토큰증권은 발행과 등록, 투자자 계좌 관리, 거래 체결, 권리 이전과 결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는 투자자의 계좌와 권리 정보를 관리하고 예탁결제원은 전자등록과 발행 총량 관리 등 법령에 따른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여러 컨소시엄이 서로 다른 분산원장 기반의 토큰증권 인프라를 준비하고 있다. 이때 예탁결제원이 각 분산원장에 검증 노드로 참여한다면 원장에 기록된 발행·소각 내역과 총량, 거래상태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므로 기관 간 정보 연계와 총량관리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원장에 기록된 수량이 정확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수량의 근거가 되는 증권사 내부 계좌원장과 실제 투자자 권리까지 정확하다고 볼 수 있을까. 분산원장은 기록된 데이터의 무결성과 거래 이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원장에 입력되기 전 원천 데이터의 정확성까지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부 계좌원장과 분산원장의 수량이 일치하는지, 권리 변동이 적법하게 반영됐는지, 불일치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고 수정할 것인지에 대한 검증과 통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에서 발행량과 유통량을 확인할 수 있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준비자산이 실제로 존재하고 적절하게 관리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특히 여러 금융기관과 플랫폼이 참여하는 환경에서는 발행·상환 기록과 준비자산의 일치 여부뿐 아니라 각 기관의 역할과 책임도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결국 디지털 금융의 신뢰는 원장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록이 어떤 근거로 생성됐으며, 정확성을 누가 책임지고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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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의 신뢰체계: 트러스트 프레임워크와 트러스트 레이어

공통의 신뢰 기준을 실제 금융거래에 적용하려면

그렇다면 이러한 신뢰를 금융시장 전반에서 일관되게 확보하려면 어떤 구조가 필요할까? 우선 금융기관과 거래 참여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정보 제공과 검증 기준, 사고 발생 시의 대응 절차를 공통으로 정의하는 트러스트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 금융 규제와 내부통제, 감사 기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관이 동일한 기준으로 신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공통의 운영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러스트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정의된 신뢰 기준이 실제 금융거래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고 검증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금융시스템에서 공통의 신뢰 기준을 실행하고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술적 계층이 '트러스트 레이어(Trust Layer)'다.

트러스트 레이어는 금융기관의 기존 시스템이나 분산원장을 대체하는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각 기관이 관리하는 원천 기록과 거래상태의 정합성을 확인하고 거래 권한과 자금세탁방지(AML) 등 정책 준수 여부를 검증하며, 그 과정에서 생성된 증적을 다른 참여기관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증권사는 투자자별 권리와 내부 기록의 정확성을 책임지고 예탁결제원은 발행 총량을 관리한다. 트러스트 레이어는 이러한 기관별 역할과 책임을 유지하면서 공통의 검증 기준을 적용하고 그 결과를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블록체인이나 금융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개방적인 구조가 중요하다. 금융기관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운영하더라도 공통의 정책과 검증 기준을 적용하고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필요한 검증 결과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적 검증이 금융기관의 내부통제나 독립적인 감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원천 데이터의 정확성을 관리하는 책임은 해당 금융기관에 있으며, 이를 확인하는 감사와 감독체계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 따라서 트러스트 레이어는 제도적 신뢰를 기술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신뢰체계를 서로 연결하고 검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디지털 금융 경쟁력은 연결 가능한 신뢰에서 나온다

우리 금융산업은 오픈뱅킹을 통해 서로 다른 은행의 계좌와 서비스를 연결하는 경험을 축적해 왔다. 이제 디지털 자산 시대에는 이러한 연결을 한 단계 발전시켜, 서로 다른 금융기관과 원장이 관리하는 자산과 권리, 거래의 신뢰까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예탁결제원 등 금융 인프라 운영기관, 기술기업과 검증기관이 함께 참여해 트러스트 프레임워크의 기준과 운영 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토큰증권의 권리 및 원천 데이터 정합성 검증이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상환 관리처럼 구체적인 영역에서 실증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융기관 간 상호운용성과 국제 금융거래로 확대하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일 것이다.

디지털 금융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자산을 토큰화하고 얼마나 빠르게 거래할 수 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스템과 기관이 만들어내는 거래 결과를 얼마나 안전하고 일관되게 신뢰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금융산업은 원장에 기록된 사실을 검증하는 것을 넘어, 그 기록의 근거와 책임까지 연결할 수 있는 공통의 신뢰 인프라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김봉규 한양대 공과대학 겸임교수·지크립토 전무(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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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한양대 교수

NH농협은행 등에서 스마트금융·핀테크·디지털R&D 분야의 주요 직무를 수행했다. NH농협은행 디지털R&D센터장을 역임하면서 오픈뱅킹 전신 격인 오픈 API를 국내 최초로 기획했다. 블록체인 기반 P2P 원리금수취권 보관서비스 도입, 한국은행 CBDC 연구·기반 플랫폼 구축 등 디지털금융 혁신 과제를 주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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