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결산 자동화, K브랜드 AX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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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포트원 최고전략책임자(CSO)

“AI 태스크포스(TF)는 꾸렸는데 성과가 없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지난 2년간 K뷰티 기업 200여곳의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만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의지나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K뷰티 브랜드의 사업 구조 자체가 AI 전환(AX)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성장하는 K브랜드는 국내 유통망을 중심으로 성장한 과거 브랜드와 네 가지가 다르다. 첫째, 국경을 넘어 판매한다. 창업 초기부터 국내외 매출의 경계가 없다. 둘째, 온라인·오프라인·B2B 채널을 동시에 수십 개씩 운영한다. 셋째, 자체 물류와 아마존 FBA, 틱톡 FBT 같은 플랫폼 위탁 물류를 함께 쓴다. 넷째,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수요를 만든다.

문제는 기업 운영의 근간인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이 국내 유통 중심의 단순한 구조에 맞춰 설계됐다는 점이다. ERP는 해외 마켓플레이스와 연동되지 않고 B2B 발주·유통을 관리하지 못하며 인플루언서 계약에 따른 지급액도 산출하지 못한다. 이러한 업무는 창고관리시스템(WMS), 주문관리시스템(OMS), 스프레드시트, 메신저 등 여러 도구에 분산된다.

결과는 데이터의 파편화다. 회사의 숫자를 정확히 담은 단일 기준이 사라진다. 월 마감은 수작업으로 몇 주씩 걸리고 채널별 공헌이익을 파악하기 위해 직원 한두 명이 매일 아침 네 시간씩 데이터를 가공한다. 위탁 물류 재고가 인식 매출과 일치하지 않아 연말마다 조정과 감사 대응에 시달린다. 창고별 재고가 보이지 않아 중복 발주와 잉여 재고가 생기고 담당자가 퇴사하면 채널 운영의 맥락도 함께 사라진다.

AI는 정확한 데이터와 맥락 위에서 작동한다. 숫자가 흩어진 환경에서 AI가 성과를 낼 수 없는 이유다. 경영진은 영업팀과 재무팀의 숫자가 왜 다른지, 신규 진출국의 마진이 적정한지, 재고를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지 확신없이 결정을 내린다. 그동안 뷰티 산업 특유의 높은 마진과 글로벌 수요가 이런 비효율을 상쇄해 왔다. AI 시대에는 다르다. 정확한 숫자 위에서 AI를 활용하는 기업은 앞서가고 재무제표 한 번 작성하는 데 20일이 걸리는 기업은 뒤처진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대형 브랜드는 기존 ERP를 추가 개발하거나 자체 OMS를 구축해 운영 체계를 개선하려 했다. 하지만 마켓플레이스별 데이터 구조가 수시로 변경되고 채널마다 정산과 재고 관리 기준이 달라 시스템 구축 이후에도 지속적인 운영과 유지보수에 상당한 부담이 발생했다.

해법은 순서를 바꾸는 데 있다. AI 도입에 앞서 결산부터 맞춰야 한다. 가장 어려운 작업이지만 한 번 정비하면 이보다 단단한 기반은 없다. 지난 3년간 뷰티 기업의 운영 체계 구축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마켓플레이스와 뷰티 산업의 운영 구조에 대한 이해, AI 기술 개발 역량을 갖추면 B2C·B2B 채널의 주문·정산·재고를 결산까지 맞추는 데 3~6개월이면 충분하다. 먼저 매출 마감을 자동화하고 이어 채권과 재고를 장부와 일치시키는 순서다. 채널별 공헌이익과 품목별 마진 같은 관리회계는 그 위에서 빠르게 갖춰진다.

AX의 본격적인 성과는 그 다음부터다. 발주 예측을 고도화해 잉여 재고를 10% 줄이고 마켓플레이스·국가·품목별 수익성을 정확히 산출해 영업 전략을 재설계하며 수금 리드타임을 파악해 10일 앞당기는 일이 가능해진다. 감에 의존하던 의사결정이 비로소 정확한 데이터와 AI 분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시작한다.

AI TF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AI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AI가 딛고 설 숫자가 없어서다. K-브랜드의 AX는 결산에서 시작해, 정확한 숫자 위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으로 완성된다.

한승호 포트원 최고전략책임자(CSO) andy@portone.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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