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헷갈리던 이름이 있다. 모네, 마네, 그리고 밀레다. 추수 끝난 들판에서 허리를 굽혀 낟알을 줍는 그림을 '모네의 이삭 줍기'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모네가 집요하게 관찰한 들판의 풍경은 1890년대에 그린 '건초더미' 연작이었다.
밀레의 그림 속 세 여인은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허리를 굽혀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다. 그들의 뒤편에는 이미 거두어들인 풍성한 수확물이 쌓여 있다. 같은 들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풍요의 결실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남겨진 낟알을 모아야 하는 생존의 현장이다. 화폭에는 고단한 노동의 무게와 그 속에서도 잃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 담겨 있다.
반면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은 수확한 곡식이 쌓인 들판을 보여준다. 계절과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곡식더미는 한 해의 노동이 축적된 결실이자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삶의 기반처럼 읽힌다.
두 화가가 나눔과 자립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선으로 두 풍경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에게 남겨진 낟알을 나누는 데 머물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까지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
우리 사회의 나눔은 오랫동안 도움이 절실한 순간을 지탱해 왔다. 한 끼의 따뜻한 식사와 겨울철 난방비, 위기 가정을 위한 긴급구호는 누군가에게 오늘을 버틸 힘이 된다. 이러한 지원과 돌봄은 앞으로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나눔이 지속적인 변화를 지향한다면 당장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작은 지역아동센터와 풀뿌리 돌봄 현장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더욱 절실하다. 아이들을 돌보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충분하지만 안정적인 재원과 인력이 부족하면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 지원금이 끝날 때마다 다음 사업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현장의 경험이 조직의 역량으로 축적되기 쉽지 않다. 떨어진 이삭을 줍느라 정작 다음 계절의 밭을 일굴 힘을 기르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눔에는 또 하나의 역할이 필요하다. 오늘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손길과 함께 내일의 활동을 지탱할 '자립의 사다리'를 놓는 일이다. 작은 조직이 일회성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쌓아 온 경험과 전문성을 다음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당장의 사업비뿐 아니라 사람과 조직에 축적되는 역량까지 지원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시민의 소액 후원에 매칭 펀드를 더해 초기 사업을 돕거나, 작은 단체가 스스로 후원자를 확보하고 관계를 이어가도록 지원하는 시도도 이러한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원의 성과를 전달된 기부금의 규모만으로 평가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지원이 끝난 뒤에도 활동이 이어지는지, 시민과의 신뢰가 유지되는지, 현장의 문제 해결 역량이 성장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나눔이 남겨야 할 것은 일회성 지원의 기록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홀로 서야만 나눔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속적인 돌봄과 공공의 보호가 필요한 이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각자의 여건 속에서 선택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비영리단체 역시 무조건적인 수익 창출보다 고유한 사회적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밀레의 여인들이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는 장면이 오늘날에도 울림을 주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그 장면의 반복에 머물 필요는 없다. 오늘의 이삭을 나누면서도 내일의 수확을 준비할 기회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의 나눔은 지금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오늘의 허기를 달래는 한 줌의 이삭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손길이 내일의 선택권을 넓히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힘까지 남긴다면 나눔의 가치는 더욱 깊어진다.
나눔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가에만 있지 않다. 그 나눔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가에 있다.
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