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사람을 닮는 로봇을 넘어, 사람을 뛰어넘는 로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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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혁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 (피아이이로보틱스 CTO)

휴머노이드가 사람처럼 걷고, 물건을 집고, 집안일을 하는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의 대규모 동작 데이터에 기반한 학습 기술이 로봇에 적용되며 로봇 기술 개발의 방향 자체가 사람을 닮는 쪽으로 집중되고 있고, 피지컬 인공지능(AI) 경쟁 역시 휴머노이드와 이를 사람처럼 제어하기 위한 AI 모델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을 닮는 것이 곧 로봇의 목표는 아니다. 로봇을 현장에 투입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보다 빠르거나, 정확하거나, 저비용으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업용 로봇은 사람의 형상이나 동작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바로 그 덕분에 사람의 작업 속도와 효율을 크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산업용 로봇이 사람의 손과 다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형태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면, 그 로봇 성능의 상한은 결국 사람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로봇 하드웨어 혁신이 현재 로봇 기술의 난제들을 해결할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소프트 로봇 기술에서 출발한 고적응성 구조는 복잡한 센서와 제어 없이도 물체와 환경에 스스로 맞춰 변화하는 특징이 있어, 이를 이용하면 사람도 하기 어려운 작업까지도 오히려 쉽게 해낼 수 있게 된다.

AI 기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습한 환경 조건을 벗어나면 여전히 오동작이 발생하기 쉽고 학습에 드는 자원과 시간도 만만치 않다. 반면, 고적응성 구조가 접목된 로봇은 적은 수의 액추에이터만으로 시스템을 단순하게 구성할 수 있어,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필자가 개발한 코끼리 코 모사 만능 그리퍼가 한 예이다. 코끼리는 작은 물체는 코끝을 오므려 잡고, 큰 물체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흡착해 잡는다. 개발한 그리퍼는 이 동작을 유연한 허니컴 구조 하나로 구현했다. 와이어를 당기면 유연한 표면이 물체 형상대로 오므라들고, 내부의 구멍으로 음압을 인가하면 표면 전체가 석션 컵처럼 작용한다.

덕분에 그리퍼의 100분의 1 크기보다 작은 한방 침(직경 0.25mm)을 바닥에서 꼬집어서 집어 올리고, 10배 크기인 박스를 흡착해 들어 올릴 수 있다. 침의 굵기보다 높은 위치 정밀도가 요구되어 기존 그리퍼로는 구현하기 어렵던 작업이 특별한 위치 제어 없이 구현된 것이다. 물체를 인식하고 파지 전략을 판단하는 부담이,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 자체에 흡수된 것이다.

휠도 마찬가지다. 휠은 평지에서는 지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장애물 앞에서는 무력하다. 필자가 제안한 모핑 휠은 평지에서는 단단한 원형을 유지하여 빠르게 달리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말랑해져 장애물 형상과 일치하도록 형상이 변화하면서 넘어간다. 장애물의 형상이나 위치를 미리 알 필요가 없고 별도의 센서도 필요 없다. 이 연구는 2024년 사이언스 로보틱스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이러한 하드웨어는 연구실을 넘어 산업 현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피아이이로보틱스에서는 고적응성 그리퍼를 휴머노이드에 장착해 커넥터 삽입과 같은 정밀 조립 작업을 사람보다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은 구현할 수 없고 기계장치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을 그리퍼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보다 조립작업을 훨씬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AI 모델만으로 풀기 어려운 접촉 작업의 부담을 하드웨어가 덜어주니 학습 비용과 연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장점이다.

한국 피지컬AI의 경쟁력도 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대규모 AI 모델을 따라 구축한다거나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 반면, 현재 제조 자동화에서의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로봇 하드웨어 플랫폼을 발굴하고, 이와 효과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 특화된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제조 현장과 부품 산업의 기반을 갖춘 한국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영역이다.

세탁기라는 기계가 나오기 전이었다면, 아마 휴머노이드가 손빨래하는 영상이 큰 호응을 얻었을 것이고, 로봇청소기가 아직 나오기 전이었다면 휴머노이드가 손걸레질을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모습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세탁기와 로봇청소기보다 일을 잘했을까?

세탁기와 로봇청소기가 그랬듯,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로봇 기술 난제들도 새로운 하드웨어 접근 방식을 통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사람을 닮는 로봇을 넘어 사람을 뛰어넘는 로봇에서 한국 피지컬AI의 답을 찾기를 기대한다.

송성혁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피아이이로보틱스 CTO) songsh@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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