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존 금융법이 블록체인의 특성을 어디까지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남는다.
미국에서 투자계약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되는 Howey Test는 1946년에 확립됐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블록체인, 스마트계약, 탈중앙화자율조직(DAO)과 같은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술이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증권법의 투자자 보호 원칙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발행자가 투자자에게 사업 성공과 수익을 약속하면서 자금을 모집한다면 그 수단이 주식이든 토큰이든 경제적 실질에 따라 규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운영주체가 분산되고, 토큰의 기능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상품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향후 규제에서는 토큰의 명칭이나 기술적 형식뿐 아니라 네트워크 통제구조, 발행자의 역할, 투자자에게 제공된 약속, 토큰의 실제 활용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준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의 발행과 유통, 거래소 규율, 이용자 보호 등을 포함한 후속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에는 토큰화된 주식·채권과 일반 가상자산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초기 토큰 발행과 이후 2차시장 거래를 동일한 규제로 다룰 것인지, 중앙 운영자가 없는 프로토콜에는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 등이 주요 과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의 CLARITY Act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미국과 한국은 증권법 체계와 시장구조, 감독기관의 권한 배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털자산 규제에서 자산의 명칭보다 발행과 유통 과정의 경제적 실질을 구분하고, 증권 규제와 비증권 디지털자산 규제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국내 제도 설계에서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디지털자산 규제 논쟁은 주로 “특정 코인이 증권인가 상품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CLARITY Act가 보여주는 방향은 이러한 이분법만으로 디지털자산 시장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초기 토큰 판매가 투자계약에 해당하더라도 이후 네트워크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토큰이 실제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자산 자체의 법적 성격을 별도로 판단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토큰이 네트워크에서 사용된다는 이유만으로 초기 자금조달 과정에서의 투자자 보호 의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향후 규제의 핵심은 '코인이 증권인가 상품인가'라는 단일 질문보다는 '어떤 거래가 증권거래이며, 어떤 자산이 디지털상품이고, 각각의 단계에서 어떤 규제를 적용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데 있다. CLARITY Act는 아직 최종 법률이 아니지만, 미국의 디지털자산 규제가 자산 자체의 분류를 넘어 발행·유통·거래 구조 전반을 규율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