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중국 첨단 패키징,고객 설계가 가르는 양품 원가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좋은 칩을 모았는데 완성품의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 배선에서는 전력이 소모되고 특정 위치에 열이 몰린다. 가열과 냉각이 반복되면 서로 다른 재료 사이에 응력이 쌓인다. 첨단 패키징의 본질은 완성된 칩에 외장을 입히는 작업을 넘어, 부품들을 고객이 구매할 하나의 제품으로 만드는 데 있다. 성능표의 합계보다 약속한 성능을 충족하는 양품 한 개의 출하 원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창뎬커지(长电科技)의 2026년 반기보고서는 중국 기업이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회사는 시스템 집적 설계부터 웨이퍼 검사, 패키징과 완성품 테스트까지 제공하며 칩렛용 고밀도 집적 플랫폼 XDFOI의 양산을 공시했다. 후공정 기업이 고객의 설계에 일찍 참여해 어떤 부품과 공정을 쓸지 함께 좁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쟁력은 공장 수보다 이런 조정이 고객의 주문과 설비투자를 어떻게 바꾸는지에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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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설계 안으로 들어가는 후공정

이 변화의 배경에는 연산 칩과 메모리 사이의 데이터 이동이 있다. 인공지능 연산능력을 높여도 데이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시스템은 기다린다. 칩을 가까이 배치하거나 수직으로 쌓는 이종 집적은 그 거리를 줄인다. 기능을 작은 칩으로 나누는 칩렛은 기능별로 적합한 제조공정을 선택하게 하지만, 칩 사이의 통신 회로와 배선·접합·검사라는 추가 비용을 동반한다. 고객의 선택은 어느 한 공정의 최고 성능보다 완성 시스템의 성능과 비용에 달려 있다.

칩을 받치며 신호·전력을 전달하는 기판과 열전달 소재도 같은 설계의 일부가 된다. 연결을 촘촘하게 하거나 소재를 바꾸면 전기적 특성뿐 아니라 온도와 휨, 접합부의 응력이 달라진다. 설계가 확정된 뒤 이를 고치면 시료를 다시 만들고 출시 일정을 조정하는 부담이 생긴다. 반도체 조립·테스트 외주업체인 OSAT가 공정의 제약을 일찍 제공할수록 고객은 생산 단계의 실패를 설계 단계에서 줄일 여지가 생긴다.

퉁푸마이크로(通富微电)의 2025년 연차보고서에도 고객의 특수 요구에 맞춘 설계와 생산능력 계획, 납기가 함께 등장한다. 회사는 초대형 멀티칩 패키지와 열관리 해법의 개발·양산을 설명하고, 말레이시아 공장의 멀티칩 검증과 범핑·웨이퍼 검사 가동을 공시했다. 범핑은 칩을 연결할 미세 돌기를 만드는 공정이다. 주문을 받은 뒤 빈 설비에 배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고객 제품의 다음 공정을 어느 거점에서 맡을지 준비하는 사업이 됐다.

고객마다 원하는 조합은 다르다. 고성능 연산용 대형 패키지와 자동차용 칩, 모바일 기기용 소형 패키지는 성능·신뢰성·단가의 우선순위부터 다르다. 창뎬커지의 공시도 적용 분야별 기술과 생산능력을 제시한다. 인공지능 시장의 확대를 모든 후공정 공장의 수주 증가로 옮겨 적기 어려운 이유다. 특정 고객군에서 쌓은 공정 경험과 검증 이력은 새 주문을 받을 자산이지만, 다른 제품군으로 옮겨갈 때는 추가 개발과 고객 평가의 비용이 든다.

기판의 준비와 고객 양산 사이

고객 요구가 부품 구매로 이어지는 모습은 기판에서 선명하다. 선난뎬루(深南电路)는 2026년 반기보고서에서 기판 고객에 종합반도체기업, 설계사와 패키징·테스트 업체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규격을 정하는 조직과 실제 조립하는 조직이 다를 수 있는 셈이다. 회사는 재료를 미리 확보하고 공급업체와 협력하는 한편 고객과 신소재 검증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공급자에게는 재고 확보가, 구매자에게는 재료 변경의 승인이 걸려 있어 두 결정이 맞아야 납기가 성립한다.

같은 국산화 투자 안에서도 기업의 위치는 갈린다. 선난뎬루는 고급 FC-BGA 기판이 여러 고객의 양산에 공급되면서 공장 증산이 빨라졌다고 공시했다. 반면에 싱선커지(兴森科技)는 같은 기간 해당 기판의 수율과 샘플 주문이 개선됐지만 아직 대량생산에 이르지 못해 인건비·감가상각·재료비 등이 손익에 부담을 줬다고 밝혔다. 고객의 제품에 들어간 기판은 증산을 부르고, 도입을 기다리는 기판은 설비 유지비를 먼저 발생시킨다. 고객 도입에 따라 현금이 돌아오는 시간이 달라진다.

지방정부의 지원은 이 대기시간을 견딜 기반을 넓힌다. 상하이(上海)가 올해 8월 공개한 전략적 신흥산업 계획은 첨단 패키징의 연구개발·양산 적용과 장비·소재 개발을 함께 지원 대상으로 제시했다. 별도로 올해 가동한 린강(临港)의 창뎬커지 자동차전자 공장에는 지방 국유투자회사가 출자하고 클린룸 구축에 필요한 공급망을 연결했다. 공장 건설과 공급업체 확보를 함께 돕는 구조다. 다만 지역의 자본이 공급능력을 만들더라도 그 설비를 채우는 제품과 구매물량은 고객의 결정으로 남는다.

도면을 넘어 공유해야 할 공정 지식

고객 도입의 문턱에는 설계에 쓸 자료가 놓인다. 칩 제조공정의 제약을 담는 공정설계키트 PDK와 패키지 조립의 배선·접합·치수 허용조건을 담는 조립설계키트 ADK가 그 예다. 지멘스의 기술자료는 설계사·조립업체·설계도구 공급자가 검증한 규칙을 함께 제공할 때 여러 공정에서 만든 칩의 조립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정의 지식을 설계자가 사용할 모델과 규칙으로 바꾸면, 생산이 어려운 도면을 뒤늦게 돌려보내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

설계자료의 공유에는 권한과 유출의 문제가 따라온다. 고객의 설계와 공급업체의 재료 모델, 불량 분석용 시험 데이터는 소유자와 공개 범위가 다르다. 필요한 자료를 받지 못하면 원인을 좁히지 못하고, 지나치게 넓은 공개를 요구하면 참여기업이 기술 유출을 우려한다. 공동개발에서는 제품별로 열람·재사용할 자료와 변경 승인자를 합의하는 일이 중요하다. 기업 간 분업을 지속시키기 위해 풀어야 할 거래의 과제다.

칩렛 연결 규격 UCIe는 이런 조합에 공통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규격은 접속 속도와 함께 검사·오류 진단·관리기능을 다루며 공급업체마다 별도로 합의할 연결 항목을 줄인다. 그래도 실제 패키지의 열·전력·신뢰성 평가는 제품별로 남는다. 공통 규격이 부품 간 접속의 출발점을 맞춘다면, 고객 검증은 그 조합을 어느 사용조건에서 출하할지 결정한다. 표준의 채택과 고객의 양산 승인은 공급망에서 맡는 역할이 다르다.

검사비와 폐기비 사이에서 생기는 이익

생산에 들어가면 합의한 설계가 실제로 성립하는지 검사 결과로 드러난다. 결함이 있는 칩 하나를 조립 전에 걸러내면 손실을 그 단계에서 멈출 수 있다. 완성 뒤에 발견하면 함께 묶은 양품 칩과 기판, 가공시간까지 잃을 수 있다. 미국 대학 연구진의 칩렛 원가 분석 도구 CATCH가 검사비와 폐기비를 함께 계산하는 이유다. 검사의 범위를 넓힐 때 절약되는 폐기비가 추가 검사비보다 많아야 제품의 총비용이 낮아진다.

国金证券(궈진증권)의 올해 8월 테스트 장비 보고서도 칩렛 집적으로 검사 지점과 검사시간이 늘어나는 흐름을 분석했다. 검사업체에는 매출 기회지만 생산업체에는 같은 물량을 처리할 장비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테스트 역량의 확대를 곧바로 OSAT 이익의 확대로 볼 수 없다. 어느 결함을 언제 찾는지, 검사 결과가 설계나 공정의 수정으로 이어지는지에 따라 검사에 쓴 돈의 회수 가능성이 달라진다.

양산의 학습은 그다음에서 일어난다. 불량의 위치와 발생조건을 특정 재료 로트나 접합 조건과 연결하면 수정할 범위가 좁아지고, 같은 검사를 되풀이하는 비용도 줄어든다. 수정 뒤 다른 생산 로트에서도 개선이 유지되는지가 중요하다. 고객 제품별로 재료·가공·검사·재작업의 총비용을 중복 없이 합산하고 출하 가능한 양품 수로 나누면, 공장 평균 수율에서 보이지 않던 주문별 채산성이 드러난다. 이 차이가 어느 제품을 더 생산할지 결정하게 한다.

재료의 국산화나 공급업체 교체도 같은 계산 안에 들어간다. 값싼 기판을 도입해도 설계 수정·재시험·초기 폐기가 늘면 구매부서의 절감액이 개발·생산조직의 비용으로 옮겨갈 수 있다. 반대로 검증된 대체재를 확보하면 공급 지연 때 출하를 지킬 여지가 생긴다. 중국의 넓은 공급망은 이런 선택을 시도할 기반이다. 그 폭이 고객의 이익으로 바뀌는 지점은 대체 조합이 승인되고 납기나 양품 원가가 개선될 때다.

설비투자의 시계는 고객 제품이 정한다

이제 증설은 장비 구입 이상의 문제가 된다. 36Kr(36氪)에 실린 올해 7월 중국 현지 취재는 첨단 패키징 확장의 병목으로 장비 납기와 재료 공급을 함께 짚었다. 공장 완공, 장비 설치, 재료 확보와 고객 도입이 어긋나면 감가상각과 인건비가 매출보다 먼저 발생한다. 특정 크기와 구조의 패키지에 맞춘 설비는 주문이 바뀌었을 때 전환비용도 발생시킨다. 생산능력의 숫자 옆에 판매할 제품군과 고객 도입 일정을 놓아야 설비의 경제적 가치가 보인다.

글로벌 업체 앰코(Amkor)는 올해 투자자 설명자료에서 공동개발과 다년 제품계획을 생산능력 조정에 연결했다. 고객에게는 원하는 시점의 공급을, 제조업체에는 투자 회수의 가시성을 높이는 접근이다. 중국 업체의 개별 비용 분담 조항은 공개 자료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예상 주문과 확정 구매물량의 차이, 출시 지연·설계 변경·취소에 따른 비용 부담은 한국의 투자자가 계약에서 확인할 핵심이다. 고객과 가까워질수록 수주가 안정될 수 있지만 특정 제품에 묶이는 자본도 커진다.

수출 제품에는 조달과 판매 시장의 제약까지 겹친다. 필요한 연산 칩과 메모리를 구하지 못하면 패키징 공정만으로 주문을 완성할 수 없다. 미국 산업안보국의 올해 5월 지침은 통제 대상 첨단컴퓨팅 품목을 중국 등에 본사나 최종 모기업이 있는 기업에 공급할 때 해외 소재 기업에도 기존 허가 의무가 유지된다고 재확인했다. 공장의 입지를 바꾸는 결정과 어느 고객에게 어떤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지는 함께 검토할 사안이다. 설계가 확정된 뒤 거래 가능성을 따지면 조달처 변경과 재검증의 비용이 더해진다.

중국이 쌓는 강점은 각 부품의 국산화율을 더한 값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후공정 기업의 고객 기반, 기판·소재 공급자의 개발, 지역의 자본이 같은 제품을 향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고객 도입이나 부품 조달이 막히면 설비의 규모가 대기 비용을 키운다. 한국이 중국의 증설 규모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자사의 메모리·기판·소재가 고객의 어떤 문제를 줄일지 먼저 골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첫 사업은 한 패키지의 열과 휨에서

한국에는 국내 팹리스가 발주하고 OSAT와 기판·열전달 소재기업이 함께 개발하는 서버용 패키지 사업을 제안한다. 이미 개발 중인 고객 제품 하나를 택해 칩의 성능과 수명 조건을 유지하면서 온도·휨·불량과 양품 원가를 개선하는 사업이다. 개별 부품의 최고 수치를 경쟁하기보다 같은 제품에서 바꿀 수 있는 항목을 좁혀 고객이 채택할 조합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돈을 내는 고객이 시료와 사용조건을 제공하고, 공급기업은 제안한 변경의 개발·시험비를 견적에 넣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양측이 분담할 개발비와 자료의 재사용 범위는 계약에서 정한다. 필수 성능·신뢰성을 충족한 뒤 양품 원가나 납기가 개선돼야 다음 생산 물량과 증설을 논의한다. 고객이 구매할 이유가 확인되지 않으면 공정 연구를 이어갈 수는 있어도 양산 설비투자는 보류하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광주 패키징 거점·실증센터 구상도 이 사업의 검증 단계를 지원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고객 시료, 신뢰성 평가, 반복 생산의 결과에 따라 공공지원금을 나눠 집행하면 기업의 개발비와 공공의 기반 투자를 구별하기 쉽다. 지자체는 기존 시설에서 부족한 열·응력·고장 분석 기능과 운영인력·재료비를 보완한다. 시험을 예약하고 결과를 받는 시간이 예측돼야 기업도 그 시설을 고객의 제품개발 일정에 넣을 수 있다.

같은 시료를 놓고 대학은 열·응력 모델과 실제 불량의 차이를 분석하고, 스타트업은 계면 결함 계측이나 불량 위치 추적으로 원인 분석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공개할 형상·물성·시험결과를 합의하면 원본 설계를 무제한 공유하지 않고도 역할을 나눌 수 있다. 계측 서비스의 고객은 참여기업이며, 유상 시험에서 분석시간이나 재시험 횟수가 줄었는지로 구매 효과를 평가한다. 연구성과와 서비스 매출이 고객의 다음 공정 변경에서 만나는 구조다.

금융권이 볼 것은 공동개발 협약의 명칭보다 고객의 채택과 확정 주문이다. 목표 수율까지의 손실, 도달 뒤의 양품 원가, 도입 지연 때의 운전자금을 따로 계산하고 자금 집행을 다음 검증 결과에 연동할 수 있다. 고객이 취소했을 때 설비를 다른 제품으로 채울 수 있는지도 회수 가능성을 좌우한다. 한국 산업계는 다음 증설에 앞서 어느 고객의 패키지 한 개를 함께 개선하고 그 고객의 주문으로 투자를 회수할 것인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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