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속인터넷을 확산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요인은 낮은 법적 진입장벽이었다. 당시 초고속인터넷은 음성보다 중요도가 낮은 부가통신사업으로 분류돼 사업자는 신고만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두루넷이 첫 테이프를 끊고 여타 통신사가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둘째, 요금 수준이 저렴했다. 두루넷은 막대한 투자비에도 시장 선점을 위해 ISDN보다 저렴하게 3만원대의 공격적인 요금을 설정했다. 이는 접속 매체와 무관하게 사실상 시장가격의 상한선으로 작용했다.
셋째, 전화선을 대신할 수 있는 케이블망·광케이블과 같은 대체망이 존재했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접속망 부설과 유통망 확보는 필수적이다. 특히 유선에서 큰 장벽은 가입자선로다.
하나로통신은 밀집의 경제가 작동하는 300가구 이상의 단지에 광케이블을 부설하기도 했지만, 전국 가가호호에 걸쳐 KT와 같은 동선망을 구축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망 세분화(LLU) 도입되기 이전이니 KT의 전화선을 빌릴 수도 없었다. 가입자선로는 경쟁사가 쉽게 복제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애로설비'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루넷·하나로는 대신 기존 케이블망을 빌리거나 자체망을 구축하며 가구를 공략했다. 케이블망은 애초 유료방송을 제공하기 위해 각 지역에 깔려 있었고, 한 간선에서 여러 가구로 분기되는 트리 구조이기에 확장이 쉬웠다.
'전화망 대 케이블망' 간 치열한 설비기반경쟁에는 2000년 한국전력의 회선사업을 분리해 출범한 파워콤의 역할이 컸다. 전력 분야에서 남아도는 회선 공급이 시장을 혼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도매 사업으로 제한한 것이 오히려 원활한 망 공급을 유발했다. 세계 최초로 하나의 케이블망을 여러 ISP가 함께 사용하는 M-ISP 시스템은 망의 활용도를 높여주었다. SO가 보유한 케이블망이나 장비 설치를 위한 사옥의 임대도 도움이 되었다.
지리적 조건도 유리했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형태에 더해 전체 가구의 90% 이상이 전화국 반경 2㎞내에 위치하는 높은 인구밀집도 덕에 KT는 감쇄 현상 없이 기존 동선망을 이용해 ADSL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2001년에는 전국에 PC방이 2만개가 넘어 수요를 촉진했고 온라인게임은 대표적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기능했다. 한국인의 'Pali(빨리) 정신'도 보급의 촉진제였다. 정부의 강력한 정보화 촉진 의지도 거들었다. 정보통신부는 '제1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1996년)'을 수립, 민간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마중물을 부었다. 국가망을 직접 구축하여 공공·교육 기관의 비상업적 용도로 제공했고 선도망은 정부·기업이 다양한 기술 개발을 실행하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했다.
초고속인터넷의 성공은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였지만, 무엇보다 자유로운 시장 진입 환경에서 과감한 선발 기업이 경쟁의 방아쇠를 당기고 이를 대체망이 뒷받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