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재난 사례로 본 기업·공공기관의 해외 위기관리와 재난 대응
해외 긴급대피부터 비상대피 계획·위기 대응 모의훈련까지 현장 실행력 점검
공항이 폐쇄되고 국경 통과 조건이 바뀌는 위기 상황에서는 미리 마련한 대피 경로도 이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해외 사업장과 인력을 관리하는 기업과 공공기관은 누구를 보호하고, 누가 대피를 결정하며, 현지 이동과 의료·보안 지원을 어떻게 연결할지 사전에 정해야 한다. 현지 인력과 운송 수단을 확보하고 상황에 맞는 결정을 제때 내려야 계획이 실제 대응으로 이어진다.

인터내셔날SOS의 '글로벌 리스크 전망(Risk Outlook) 2026'에 따르면 응답자의 57%는 새로운 위험이 조직의 대응 속도보다 빠르게 나타난다고 답했다. 위기 상황에서 팀을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한 응답자는 35%에 그쳤다. 위험 전개 속도에 맞춰 인력과 지원 자원을 가동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안 대피는 분쟁이나 재난으로 위험해진 지역에서 사람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는 활동이다. 현지 여건에 따라 해당 국가 내 안전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육로로 국경을 넘고, 항공편을 이용해 국외로 대피할 수 있다. 대규모 위기에서는 위험 평가와 이동 계획, 현장 지원을 연계하는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인터내셔날SOS에 따르면 2026년 3월 국내 K은행은 중동 지역 주재원과 배우자, 자녀 2명 등 4명의 긴급 철수를 요청했다. 인터내셔날SOS는 3월 3일 지원 요청을 접수했으며, 일행은 주재도시에서 인근 도시와 인접국, 동남아 경유지를 거쳐 3월 7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당초 계획한 인접국 직접 이동이 어려워지자 인근 도시를 경유하는 육로로 경로를 변경했다. 은행 본사와 가족, 대응팀은 이동 현황과 항공편 일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경유지 숙박과 공항 간 이동, 귀국 후 임시 숙소까지 지원이 이어졌으며 전원이 무사히 귀국했다.
같은 달 카타르 도하에서는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이 임직원과 동반 가족, 해외 여행자 등 약 150명의 일본 대피 지원을 인터내셔날SOS에 의뢰했다. 대상자 중에는 10세 미만 어린이 약 40명과 임신부도 포함됐다.
인터내셔날SOS는 일본어 지원과 현장 동행을 위해 도쿄의 보안 매니저를 도하에 파견하고, 현지 당국 및 국경 관계자와 이동 승인을 협의했다. 버스별 전담 담당자를 배치해 탑승객 관리와 의사소통을 지원했으며, 보안 인력이 이동에 동행하고 의료 상황에 대비한 지상 구급차도 대기시켰다. 일행은 도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을 넘어 리야드로 이동한 뒤 일본행 항공편을 이용했다.
두 사례는 안전한 대피 경로를 확인하고 현지 여건에 맞춰 이동 방식을 판단하는 한편, 본사와 현장 간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대피 대상자의 연령과 건강 상태 등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지원 계획도 필요했다.
자연재해 대응은 피해 지역에서의 대피뿐 아니라 현지에 남은 가족에 대한 지원까지 포함할 수 있다. 2023년 튀르키예 지진 당시 인터내셔날SOS는 하타이 지역에서 친척을 방문하던 직원 부부의 소재를 확인하고 대피를 지원했다. 요청 접수 후 36시간 이내에 부부를 육로로 튀르키예 남부 도시 아다나까지 이동시키고, 이스탄불행 항공 이동을 조정했다. 하타이에 남은 친척들에게는 식량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이러한 현장 대응을 가능하게 하려면 조직 내부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고 판단·승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임직원과 가족의 위치, 대기와 이동에 따른 위험, 경로 차단 시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출장자와 주재원, 현지 직원, 동반 가족 등 보호 대상과 지원 범위를 명확히 하고 연락처와 체류 정보를 정기적으로 갱신할 필요가 있다. 개인별 국적과 출입국 요건,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가족이 서로 다른 장소에 머무는 경우에는 집결 장소와 이동 방법을 사전에 정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대피 판단 기준과 본사·현지 책임자의 역할, 대체 승인자와 긴급 비용 승인 절차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공항·국경의 운영 제한, 주요 이동 경로 차단, 의료체계 기능 저하 등은 대피 검토 기준에 포함할 수 있다. 실제 출발 시점과 경로는 최신 위험 평가와 현지 이동 가능성을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
사전에 수립한 계획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모의훈련도 필요하다. 연락 두절, 공항 폐쇄, 가족의 분산 체류 등을 가정한 위기 대응 모의훈련을 통해 연락망과 승인 절차, 비상대피 계획을 점검하고 보완할 수 있다. 해외 사업이나 파견 인원에 변화가 생기면 대응 계획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인터내셔날SOS는 위험정보 분석과 보안 컨설팅, 현지 의료·보안 지원을 연계해 기업과 공공기관의 글로벌 위기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위기관리 컨설팅을 통해 정책·체계 검토, 비상대피 계획 수립, 경영진 브리핑과 모의훈련 등을 제공하며 조직의 대응 준비를 점검·보완한다. 사건 경보와 지역별 위험 분석 정보는 통합 위험관리 플랫폼 'Quantum(퀀텀)'과 어시스턴스 앱 등을 통해 전달돼 상황 파악과 대응 판단을 돕는다.
박성진 인터내셔날SOS 코리아 수석 보안매니저는 “비상대피의 관건은 잔류와 이동에 따른 위험을 분석해 대피 대상과 적절한 이동 시점·경로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기업과 기관은 국경 통제 상황, 운송 수단의 가용성, 사업 특성을 반영해 자체적인 대피 기준과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돌발 상황에 대비한 대체 경로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임직원 안전관리와 재난 대응의 실행력은 보호 범위와 의사결정 체계, 현지 지원 역량이 실제 대응 과정에서 연결되는지에 달려 있다. 위기 발생 시 우리 조직은 임직원과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필요한 지원을 이어갈 준비가 돼 있는가?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