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정책은 현장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하고, 산업 구조를 바꾸는 데서 완성된다. 창업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 지원금 확대만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사업모델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의 문을 여는 일이다.
화장품법과 관련한 제도 변화는 이러한 규제개혁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1년 전후 화장품 원료 관리와 제조·판매업 체계가 정비되면서 기업 개발과 시장 진입 여지가 넓어졌다. 다만 이를 단일 법 개정이나 K뷰티 성장의 직접적 원인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법령과 하위 규정, 행정 운영 변화가 누적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변화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원료 관리가 사전 허용 목록 중심에서 금지·제한 원료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며 기업 개발 자율성이 커졌다. 물론 안전성 기준과 표시·광고, 품질관리 의무는 여전히 적용된다. 둘째, 제조와 브랜드 기획·판매 분업이 가능해졌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는 기업도 적법한 제조·품질관리 체계를 갖춘 사업자와 협력해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K뷰티의 세계적 성공을 단독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제조기술과 품질 경쟁력, 기업가정신, 한류, 글로벌 유통망과 온라인 플랫폼 확산이 함께 작용했다. 다만 규제 환경 변화가 새로운 브랜드 진입과 제조·브랜드 간 협업을 촉진한 것은 분명한 제도적 기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소영 장관이 지난 8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협회장들 간담회에서 화장품산업을 규제개혁 사례로 언급했다면, 이는 규제개혁이 산업 진입 구조와 가치사슬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규제개혁을 기업 비용 절감이나 행정 부담 완화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는 성장 전략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AI, 바이오, 로봇, 모빌리티 등 신산업에서는 기술이 개발돼도 기존 법령에 사업모델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 시장 진입이 막히는 일이 발생한다. 제도가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업은 해외로 나가거나 사업화를 포기할 수 있다.
정부는 새로운 기술을 기존 규제에 일률적으로 맞추도록 요구하는 데서 나아가, 안전과 소비자 보호를 지키면서 혁신이 실현되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규제 완화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위험 수준에 따른 기준, 사후 감독, 이해관계자 조정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장관이 규제개혁을 중점 정책으로 추진하려는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현장 목소리를 바탕으로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하려는 이 장관의 접근은 창업 생태계 현실에 부합하는 책임 있는 정책 리더십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성과는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 규제 문제를 상시 발굴하고 개선으로 연결할 전문적이고 투명한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기존 산업 종사자와 소비자, 지역사회 안전과 공정경쟁에 대한 우려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역시 이 장관이 지시한 기존 정책 재검토 취지에 맞춰 접근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출범한 청년창업사관학교는 교육과 보육 경험, 졸업기업 네트워크를 축적해 왔다. 사업 조정이나 운영방식 변경 가능성이 거론되더라도 폐지 여부와 최종 개편안은 공식 발표와 예산·사업 공고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존 성과를 존중하면서도 변화한 창업환경에 맞게 제도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다.
협회는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단순히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중 육성과 동문 네트워크라는 강점을 살려 민간 액셀러레이터 투자, 후속 성장, 글로벌 진출을 결합한 '청창사 2.0'으로 발전시키자는 제안을 해왔다. 이는 민간의 정책 제안이며 확정된 정부 정책과는 구분해야 한다. 민간 참여를 확대할 경우 선정 공정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명확한 기준과 평가체계도 필요하다.
현장 목소리를 듣고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는 이 장관의 유연성과, 규제개혁으로 새로운 산업 가능성을 열려는 통찰은 서로 연결돼 있다. 창업정책은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와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 지원 종료 이후 필요한 자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규제개혁 성패는 검토한 규제 숫자가 아니라, 안전과 공정성을 지키면서 혁신기업과 산업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 기존 산업과 혁신기업 간 갈등 해결, 법령 개정과 시장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하며, 안전사고와 소비자 피해, 시장 독점과 불공정 경쟁 같은 부작용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2011년 전후 화장품 관련 제도 변화가 K뷰티 성장의 제도적 환경을 형성했듯이, 앞으로의 규제개혁도 10년 뒤 대한민국을 대표할 혁신산업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안전과 소비자 권익, 공정한 경쟁 질서가 함께 지켜져야 한다.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는 이 장관이 보여준 현장 중심 행정과 기존 정책을 열린 자세로 재검토하려는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창업기업과 초기투자자가 겪는 규제 문제를 전달하고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데 적극 참여할 것이다. 규제 완화의 기대효과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위험과 보완책까지 함께 제시하는 것이 민간의 책임이다.
규제개혁의 진정한 성과는 없앤 규제 숫자가 아니라, 안전과 공정성을 확보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기업과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으로 증명될 것이다. 이소영 장관이 현장 목소리를 바탕으로 기존 정책을 세심하게 재검토하고, 필요한 변화는 과감하게 추진하는 균형 잡힌 정책 리더십을 계속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