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투입 포항방사광가속기, '그들만의 리그' 벗어나 지역산업 엔진으로 거듭나야

전통 제조업과 미스매치·높은 R&D 문턱에 산학연 연계 지지부진
이차전지·AX 등 첨단 신산업 부상…실질적 협력 생태계 구축 시동

수천억원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포항 3·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정작 지역 산업과는 겉돌고 있어, 거대 연구 인프라와 지역 기업을 잇는 실질적인 산학연 협력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포항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포스코를 비롯해 민간과 정부가 총 1500억원을 투입해 1994년 완공됐다. 이어 2015년 완공된 4세대 선형 방사광가속기 역시 건설 비용만 4300억원이 소요됐다. 건설 초기에는 이 거대 인프라가 지역 산업과 연계해 미래 신산업 발굴의 핵심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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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4세대 방사광가속기 전경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천억원이 투입된 첨단 시설이지만 지역 기업의 실질적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지역 주력 산업과 가속기 활용 분야의 미스매치 △기업의 진입 장벽 및 R&D 전문 인력 부재 △기초과학 연구 중심의 가속기 운영 및 평가 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가장 큰 원인은 활용 분야의 불일치다. 방사광가속기는 단백질 구조 분석(신약 개발), 초미세 반도체 회로 분석, 첨단 나노 소재 개발 등에 최적화된 '초거대 현미경'이다. 반면,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의 전통 산업 기반은 철강, 기계,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에 집중돼 왔다. 가속기 핵심 수요처인 바이오·제약이나 고집적 반도체 기업은 수도권에 있다. 정작 가속기를 품은 지역에서는 이를 즉각 활용할 선도 수요 기업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높은 진입 장벽과 R&D 전문 인력 부재도 뼈아픈 대목이다. 산업 현장의 난제를 가속기 실험으로 설계하고, 시료를 전처리해 방대한 측정 데이터를 상용화 기술로 치환하려면 박사급 전문 연구 인력이 필수다. 자체 R&D 역량이 부족한 지역 중소·중견기업에게는 빔타임 확보부터 데이터 해석까지의 전 과정이 넘기 힘든 '기술적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

포항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세계적인 첨단 가속기가 지척에 있어도, 당장 공정 불량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해석할 전문 인력이 없어 지역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며 “기업의 현장 고민을 가속기 실험 언어로 번역해주고 기술 상용화를 돕는 밀착형 중개 지원 생태계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국가연구시설 특성상 세계적 학술지 게재 등 기초과학 논문 성과에 무게를 두는 운영·평가 체계도 장벽이다. 대학 및 국책연구소의 기초연구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아, 당장 신제품 상용화가 시급한 지역 기업이 수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현행 빔타임 배정 시스템을 적기에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포항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도약을 비롯해 대구 수성알파시티 중심의 인공지능 전환(AX) 생태계, 케이메디허브 등 첨단 신산업 클러스터가 대구·경북에 자리 잡으면서, 가속기를 필요로 하는 첨단 수요가 지역 내에서도 자생적으로 싹트고 있다.

포항시도 최근 국내 유일의 방사광가속기 인프라와 지역 산업을 잇는 협력 생태계를 확대하기 위해 '가속기 기반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방사광가속기 활용 지역산업 생태계 육성 및 발전'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미래 소재, 이차전지, 수소 등 첨단 산업 분야의 가속기 활용 가능성과 연구 성과가 집중 논의됐다. 가속기 핵심 장비 및 부품 분야 기업과 연구기관 간 실질적 협력 생태계 구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방사광가속기의 탁월한 연구 역량이 지역 기업의 기술 혁신과 스케일업으로 직결되어야 한다”며 “연구와 산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동반 성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 기반 첨단 산업 생태계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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