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를 묻는 학문과 '왜'를 묻는 학문
인문대학은 언어와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곳이다. 흔히 '문사철'이라 부른다. 사회과학대학과 함께 '문과'로 묶이지만, 다루는 대상이 다르다. 사회과학이 제도와 현상을 자료로 분석한다면, 인문학은 그 제도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글로 읽는다. 사회과학이 '어떻게'를 묻는다면 인문학은 '왜'를 묻는다. 현상이 아니라 현상 밑에 깔린 생각이 대상이다.
그래서 인문대학 지망생의 생기부는 진단도 어렵고 학생도 채우기도 참 어렵다 말한다. 실험도 없고 제작물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일반고에서 서울대 인문계열에 진학한 남학생이다. 성적은 최상위였다. 2학년부터는 인문사회 과정 수강자가 90명이 채 되지 않아 1등급이 세 명 남짓 나오는 구조였는데, 그 안에서 거의 전 과목 1등급을 지켰다. 그러나 성적만으로 설명되는 합격은 아니었다. 그만한 성적의 지원자는 서울대를 지원한 서류 더미 안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합격하는 생기부: 선발의 관점에서 본 한 학생
1. 학업 역량: 수업을 멈춰 세우는 질문
1학년 한국사에서 광해군 재평가를 배운 뒤 자료를 더 찾아보고, 대동법에 반대했던 사실을 확인해 오히려 기존 평가가 옳다고 판단했다. 많은 자료 조사가 편견과 역편견을 함께 넘는 길이라는 소감이 덧붙었다. 3학년 경제에서는 시장 원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수업에 의문을 품고 '계몽주의와 경제학'을 주제로 흄과 케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정리해 발표했다. 수학도 놓지 않았다. 이처럼 묻고, 찾아보고, 스스로 판단한다. 인문대학이 읽는 학업 역량은 그 순서에 있었다.
2. 불명확한 경계와 더 불명확한 진로: 그럼에도 모든 과목에서 철학을 읽었다
이 학교 교육과정에는 철학 과목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은 모든 과목을 철학으로 읽었다. 생활과 윤리에서는 낙태 찬반을 칸트와 공리주의의 견해에 대입해 설명했다. 사회문화에서는 노인 문제의 해결 방향을 공자의 사상에서 찾았고, 벤담의 파놉티콘을 정보사회의 전자 파놉티콘으로 넓혀 발표했다. 영어 시간에는 자유의지와 올바른 선택의 문제를 9분간 영어로 발표했다. 문학 시간에는 '견여탄'과 '면앙정가'를 비교해 같은 양반인 정약용과 송순이 백성을 보는 눈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짚었고, 동아시아사에서는 화이사상의 기원을 주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가 글로 썼다.
독서는 세특 안에 녹아 있었다. 1학년에 읽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은 2학년 사회문화의 '갈등론과 마르크스' 발표가 됐고, '중화사상과 동아시아'는 동아시아사 탐구의 참고문헌이 됐다. 지금은 독서활동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업 속 탐구의 근거로 쓰인 책은 세특에 남는다. 학교에 없는 것은 밖에서 채웠다. 지역 일반고 공동교육과정에서 인문사회 논문반과 철학 강좌를 찾아 들었고, 사회 문제를 철학과 윤리의 측면에서 분석하는 토론 모임을 직접 꾸렸다.
이 학생의 진로희망은 '학문연구에 관심있음' 이었다. 3학년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고민을 자주 생각하고, 그 고민을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고 적었다. 진로가 명확하게 바뀌지 않아도 생기부는 깊어질 수 있다.
3. 미래 생기부 디자인: 미리 써 보는 합격의 기록
인문대학을 겨냥한다면, 아래의 모습을 3년에 걸쳐 갖추라고 말한다.
“수업에서 배운 개념의 사상적 배경을 찾아 읽고, 교과서 설명의 한계를 질문으로 정리해 발표한.” 학생
“두 편의 고전 작품을 비교해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한.” 학생
“역사적 인물에 대한 통념을 자료로 다시 검토하고, 자신의 판단과 그 근거를 글로 남긴.” 학생
이 세 문장이면, 인문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은 절반 이상 그려진다. 답을 외우기 전에 질문을 먼저 세우는 학생, 그리고 그 질문을 사람에게로 가져가는 학생. 인문대학의 합격자는 그 둘을 겸비해 가는 학생일 것이다.
*위 칼럼은 주요대학의 인문계열에 진학한 학생들의 상담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