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껍질을 제거한 뒤에도 갈색으로 변하는 속도를 늦춘 바나나가 영국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유전자 편집을 활용해 바나나의 갈변과 연화 특성을 개선한 것으로, 보관 기간을 늘리고 폐기되는 과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는 노리치에 기반을 둔 바이오기업 트로픽 바이오사이언시스가 갈변 현상을 크게 늦춘 바나나 품종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새 품종은 일반적인 바나나에 비해 저장성이 높으며, 껍질을 벗긴 상태에서도 약 하루 동안 노란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최근 해당 품종을 현재의 관련 규정에서 '정밀육종 작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영국 식품기준청(FSA)의 안전성 검토를 통과하고 식품 판매 허가를 받게 되면 현지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될 수 있다.
이 품종이 허가를 받더라도 제품에 별도의 유전자 편집 식품 표시를 붙일 필요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밀육종 관련 제도가 현재 잉글랜드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초기 판매 지역 역시 잉글랜드로 한정될 예정이다.

갈변 억제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이 사용됐다. 개발사 측은 바나나가 물리적 충격을 받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변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 세 종류를 조정했다. 그 결과 갈변 반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폴리페놀 산화효소의 생성량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자연 상태에서 갈변이 상대적으로 느린 일부 야생 바나나의 특성을 상업용 품종에 적용한 셈이다.
개발사는 바나나의 갈변 시점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식품 폐기량을 상당히 감소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국 환경식품농촌부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전체 바나나 가운데 약 5분의 1이 색이 변했다는 이유 등으로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쉽게 멍이 드는 문제까지 개선하면 생산지에서 판매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식품 제조 분야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나나는 껍질을 벗기거나 조각낸 이후 색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미리 손질해 판매하는 과일 제품에는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길라드 게르숀 트로픽 최고경영자는 갈변 속도가 느린 바나나가 과일샐러드와 바나나를 이용한 디저트 등 여러 가공식품에 활용될 수 있다며 식품 폐기 감소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품종의 개발과 상용화 추진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유럽연합(EU)과 별도의 유전자 편집 작물 규제 체계를 마련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영국은 유전자 편집 등의 기술을 활용했더라도 전통적인 교배·육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범위의 유전적 변화를 가진 작물을 '정밀육종 작물'로 분류해 관리한다. 외부 생물의 유전물질을 삽입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유전자변형(GM) 작물과는 법적으로 구분된다.
현재 영국에서는 병해충에 대한 저항성을 높인 감자, 비타민D 함량을 강화한 토마토, 가축 사료로 활용하기 위해 지방 함량을 높인 보리 등 다양한 정밀육종 작물이 연구·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FSA의 안전성 평가를 거쳐 일반 소비자가 매장에서 식품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승인된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