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민관협력 확대 추진…AI가 대체하기 어려운 현장 암묵지 주목
상하이서 만난 국가대표들 “AI 활용하되 정교한 손기술은 인간의 영역”

“인공지능(AI)이 지식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지만, 사람의 몸에 축적된 숙련기술과 암묵지를 대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산업 경쟁력이자 청년 일자리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병훈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48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AI 시대 숙련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이번 대회 전체 64개 직종 중 50개 직종에만 출전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지원 확대, 국제기능올림픽 국내 재유치 등을 통해 숙련기술 인재 육성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지금 시대에는 숙련기술이 더욱 중요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라며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이 이번 대회 56개 직종에 참가하고 대만도 한국보다 많은 직종에 출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이 참가하지 못한 14개 직종은 해당 분야에서 젊은 숙련기술 인재를 충분히 발굴하고 육성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국제기능올림픽 국내 재유치 구상도 밝혔다. 한국은 2001년 서울에서 제36회 대회를 개최했다.
이 이사장은 “국내에서 기능올림픽을 개최한 지 25년이 지났다”며 “다시 한번 대회를 유치해 숙련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과의 협력 확대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 이사장은 이번 대회 주요 후원사인 삼성의 숙련기술 인재 육성 활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민관협력(PPP)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은 국제기능올림픽을 후원하고 선수들을 채용하며 자체 기능대회도 개최하고 있다”며 “삼성과 민관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자고 제안했고, 삼성 측에서도 경영진에게 보고해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했다.

AI가 산업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숙련기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우려를 함께 제기했다.
이 이사장은 “회계사와 기자, 교수, 작가 등 머리를 쓰는 분야까지 AI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몸으로 익힌 기술은 상대적으로 대체되는 속도가 더딜 수 있다”며 이를 '인체의 신비'라고 표현했다.
특히 숙련기술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지식재산권과 이익 배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명장이 보유한 기술을 데이터화해 AI가 활용하고 수익이 발생한다면 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변화라면서도 그 성과를 노동시간 단축과 소득 분배로 연결하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AI가 숙련기술을 대체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협업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청년 일자리 지원도 확대한다. 공단은 내년 신규 시범사업으로 '청년 AI 첫 경력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AI 분야 청년 750명이 기본 1년, 최대 2년간 실무 경력을 쌓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이사장은 청년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직업능력개발 정책을 기존 중소기업 재직자 중심에서 청년층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이 강조한 숙련기술의 가치는 대회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동차정비 국가대표 김대성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전기차 고전압 배터리와 충전 시스템 등을 점검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김 선수는 AI를 활용해 낯선 해외 자동차 제조사의 부품 명칭을 익히고 정비 정보를 찾아봤다. 다만 사고로 차량이 파손된 상황에서는 숙련기술자의 경험과 현장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고는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고 파손되는 부품도 다양하다”며 “AI가 이런 경험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상디자인 국가대표 최보란 선수 역시 AI를 디자인 구상에 활용하지만 실제 제작에서는 한계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는 화려한 디자인을 제안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구현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이 한 땀 한 땀 작업하는 정교함은 기계가 따라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림질만으로 옷의 형태와 완성도가 달라지는 만큼 소재의 특성을 파악하고 손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픽디자인 국가대표 권이겸 선수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입장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는 AI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평소 이미지의 구도와 각도를 수정하는 작업 등에 AI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권 선수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공부하고 활용하면 된다”며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새로운 기능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