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와 혁신을 위한 정부, 국회의 지원이 크며 국민적 관심이 높다. 정부가 2027년 국가 R&D 예산을 39조5000억원으로 편성하며 투자를 크게 확대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연구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의 단계적 폐지와 국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연구사업 확대는 출연연의 역할과 연구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전환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출연연에 새로운 기회다. 과제 수주와 연구비 확보에 매몰되기보다 기관 고유의 임무와 국가적 전략목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만 바뀐다고 연구기관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환경의 변화가 연구성과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람과 일하는 방식, 조직문화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
조직문화는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신념, 행동양식이다. 특히 창의성과 협업이 중요한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조직문화가 곧 연구성과를 만들어내는 핵심 동력이다. 글로벌 혁신기업 구글이 최고의 팀을 만드는 중요한 조건으로 '심리적 안전감'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혁신의 토대라는 의미다. 연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PBS 이후 출연연의 경쟁력은 사람과 조직문화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첫째, 조직문화는 연구성과를 연결하는 인프라다. 미래 모빌리티, 철도안전, AI, 탄소중립과 같은 국가과제는 서로 다른 전공과 경험을 가진 연구자들이 지식을 연결하여 함께 해결해야 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은 연구주제별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고, 구성원이 스스로 정립한 조직문화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부서별 실천활동과 CA(Culture Agent)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구성원을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조직문화 혁신은 리더의 변화에서 시작해 구성원의 참여로 완성된다. 기관장이 방향을 제시하고 보직자가 먼저 행동해야 구성원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철도연은 보직자를 대상으로 조직문화 실천리더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소통장벽과 정보독점 등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노사 간 소통과 협력도 강화해 2026년 고용노동부 '노사문화 우수기관'에 출연연 최초로 선정되는 성과도 거뒀다.
셋째, 사람의 역량이 조직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한다. AI와 디지털 기술은 연구뿐 아니라 행정의 역할도 바꾸고 있다. 반복 업무는 기술이 대신하고 사람은 연구기획, 전략수립,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문제해결과 협업에 집중해야 한다. 행정인력 역시 단순한 연구지원에서 벗어나 기획과 성과확산, 정책 대응을 함께 고민하는 '연구 파트너'로 성장해야 한다. 철도연은 AI 현장적용 교육 등 역량개발을 강화해 2026년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Best HRD)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넷째, 개인의 성장과 기관의 성장을 연결해야 한다. 구성원이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개발이 기관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고 느낄 때 조직몰입도 높아진다. 철도연은 유연근무제 등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원하며 4회 연속 '가족친화 우수기관' 인증을 받았다. 구성원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개인별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PBS 폐지는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다. 출연연이 과제 수주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기관 고유의 임무와 국가적 문제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연구비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자원으로 좋은 연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인재를 키우고,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하게 하며, 개인과 기관의 성장을 연결하는 것. 이것이 PBS 이후 출연연이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혁신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그 답을 '사람'과 '조직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사공명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원장 rockcore@krr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