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연구자, 연구보다 행정 업무에 시간 더 써…“역할과 책임 명확화 필요”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가 연구 자체보다 결재, 정산, 구매 등 관련 행정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가 행정 업무를 병행하는 구조가 개별 연구자의 몰입도 저하를 넘어 출연연 전반의 경쟁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행정 서식 통합과 데이터 공유 등으로 불필요한 업무는 줄이되, 자칫 새로운 통제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연구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구체 개선안을 놓고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한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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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종사자의 주당 업무 시간 비중(자료=국가과학기술연구회)

22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출연연 종사자 6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자의 주간 총 업무 시간은 평균 51.6시간으로 집계됐다. 이 중 연구 수행에 투입한 시간은 19.6시간(37.9%)에 그쳤다. 반면 과제 정산·결재, 내부 회의, 감사·보고, 구매·조달 등에 할애된 시간은 22.1시간(42.8%)으로 직접 연구 시간보다 많았다.

보고서는 연구와 행정 업무가 교차하다 보니 연구 몰입도가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업무 집중도(21.2%), 업무 수행능력(21.2%), 업무 안정성(22.8%) 등의 만족도를 묻자 긍정 응답은 20%대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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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종사자의 연구 몰입 조건 평가(자료=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전문가들은 이 결과를 단순히 연구자의 행정 업무량 과다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 부처와연구관리 전문기관·NST·출연연마다 행정 기준이 다르고, 연구자는 감사·정산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 규정 해석과 상위 기관 협의 등을 거치느라 연구가 지연되기 때문이다. 연구 일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도록 반복·저부가가치 업무를 줄일 뿐만 아니라 기관·연구자별 기준·권한·전문성을 함께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국가는 연구 행정 부담이 국가 과학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보고 개선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10개 연방 기관과 210여개 주요 대학·연구기관이 연구 협약 양식을 통일하고 협약서를 공유하는 '연방 시범 파트너십(FDP)' 사업을 운영 중이고, 유럽연합(EU)은 연구·혁신 지원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에서 사후 정산을 거치지 않고 사전에 확정한 금액을 일괄 지급한다. 일본 역시 연구 시간 확보를 위해 연구 관련 신청서·보고서 양식을 통일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작업이 진행 중이나 세부 방법론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전문기관별 연구 서식·증빙 절차를 통일하고, NST가 23개 출연연의 공통 행정 기능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NST는 현재 채용, 홍보, 고충처리, 감사, 정보보안 등 5개 공통 행정 분야 전문 인력 100명을 채용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등은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고, 행정 통합이 정부의 새로운 통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과기노조는 “연구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NST가 비대해질수록 상급 기관으로서의 지침과 무분별한 요구만 가중될 것”이라면서 “각 출연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 인력을 더 투입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 출연연 관계자 역시 “정부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 방침에 따라 출연연이 직접 기획하는 전략 과제 비중이 커졌는데, 연구자 입장에선 과제 성과에 따른 책임이 커진 부분이 있다”면서 “실질적으로 공통 행정 기능 이관이 가능할지 내부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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