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60〉소설을 죽음에서 구한 작가, 보르헤스의 창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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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기승전결 등 기존 작법을 무시하는 보르헤스의 소설은 독자마다 전혀 다른 감흥과 결말을 유도한다. 상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그의 소설은 난해하고 불친절하다.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 관점에 의존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독자가 스스로 이해하고 분석해 함께 소설을 전개하고 완성하길 기대한다. 보르헤스의 소설이 항상 현재 진행형이고 변화무쌍한 이유다.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보자. 소설 속 작가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은 300년 전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와 언어, 문장 등 많은 면에서 일치했다. 펠리페 2세나 종교재판소의 이교도 처형 등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을 제거했다. 표절로 보이는데 창작이라 우길 수 있을까. 보르헤스는 시대를 달리해 독자마다 새롭고 다양한 감흥을 일으켰다며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세상과 작가가 만든 낡고 고정된 틀과 감옥에서 탈출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읽으라고 독자에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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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가 이소연 作

보르헤스의 소설은 곳곳에 빈틈과 함정을 만들고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해결책이 있다면 또 다른 함정에 불과하다. 독자 스스로 창의적인 독서를 통해 소설을 완성하라고 한다. 미술작가 마르셀 뒤샹의 샘은 어떤가. 남성소변기를 화장실에서 뜯어내 전시실로 옮기고 '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작품 '샘'은 더 이상 소변기가 아니다. 예술작품 '샘'이 되었다. 피카소의 작품 '황소머리'는 어떤가.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 전시하면서 '황소머리'라고 제목을 붙였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어떤가. 바나나 1개를 벽에 청색 테이프로 붙이고 '코미디언'이라 했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코미디언일까. 별난 관객이 바나나를 떼어 먹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후기를 남겼다. 그 관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바나나였다가 코미디언이 됐지만 다시 바나나가 됐다고 주장하는 걸까. 그렇다면 하수다. 코미디언을 넘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렸다. 사물은 공간, 시간 등 변화를 주면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이제 어떤가. 소변기는 샘으로 보이는가. 자전거 안장과 핸들은 황소머리로 보이는가. 바나나는 코미디언으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아직 멀었다. 완전히 다른 것을 상상해 보라. 보르헤스는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단편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보자. 유다는 누구던가. 예수를 유대인에게 팔아먹은 악당이다. 보르헤스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1설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빌려 예수가 되어 지상에 왔으니 인간은 신과 같은 지위에 있을 수 없어 악당 유다의 모습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제2설은 유다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 하나님이 부여한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한다. 제3설은 하나님이 인류구원을 위해 몸소 유다가 되어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4설을 만들 수 있는가.

단편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보자. 소설 속 소설 '미로의 신'이 나온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지루한 토론이 이어진다. 범인은 체포되지만 작가는 그 해결에 문제가 있다는 단서를 소설에 숨겨둔다. 오직 똑똑한 독자만이 이상함을 느껴 앞의 글을 다시 정독하고 작가가 숨겨둔 전혀 다른 해답을 찾아낸다. 보르헤스는 허버트 퀘인의 또 다른 작품 '어제의 장미'에서 그의 다른 단편 '원형의 폐허들'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의 장(chapter)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도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의 장에 포함된 단편이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보르헤스는 가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그를 넘어설 비범한 독자를 기다린다.

보르헤스는 우리에게 작가의 의도를 찾지 말고 작가의 친절함에 굴복하지 말라고 한다. 독서는 적극적 탐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작가를 넘어서는 창의와 창작의 과정이 돼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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