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탈피보다는 안 해본 장르나 역할을 해보자는 생각에 가볍게 출발했다. 기존과는 다른 결의 캐릭터와 작품 호흡으로 파격감을 느꼈다고들 해서 신선했다.” 배우 박은빈이 '하이퍼나이프' 속 파격 연기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디즈니+ 오리지널 '하이퍼나이프' 주연 배우 박은빈과 만났다.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드라마다.
박은빈은 섀도우 닥터로 전락한 채 스승 덕희를 향한 분노 섞인 집착을 드러내는 '정세옥'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자 방해자들을 없애는 살인자로서 극단적인 양면을 아우르는 그의 광기 연기는 직전 '무인도의 디바'나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당시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또 닮은꼴 성격의 덕희를 향한 이기적인 집착 연기는 극적인 몰입감과 함께 박은빈표 감정 연기의 새로운 호흡을 가늠하게 하며, 또 다른 기대감을 선사했다. 박은빈은 특유의 솔직담백한 화법으로 '하이퍼나이프' 정세옥 역으로서 다양한 비하인드를 이야기했다.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했나?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이상 따로 참고 작품을 찾기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다. 이번 '하이퍼나이프' 세옥 역시 '무인도의 디바' 당시 첫 제안 이후 여러 번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만들어나갔다.
독선적인 분위기와 함께 사이코패스의 전형성을 다르게 표현하면서도, 세옥으로서 정체성을 납득시키기 위한 요소들을 더해야 했기에 쉽지는 않았다.

-잔인한 모습을 연기하기 위한 과정은?
▲특별한 계산보다는 '살인이 미화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세옥으로서 낯선 이미지들을 치열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파괴력 있는 악행과 폭언을 연기하면서도, 여러 거친 장면들이 그렇게까지 표현될 줄은 몰랐다. CG와 함께 더욱 스펙터클해진 것 같다.
-소리를 지르는 감정신들이 많았는데, 그 후유증은 없었나?
▲다행히도 발성에 무리 없이 했다(웃음). 다만 8부 양경감과의 대치 장면은 작품 전반의 클라이맥스 포인트로서, 큰 책임감과 함께 이틀간 개인적으로 사투를 벌였다. 혼신을 다한 만큼 '나도 모르게 눈물났다' 하는 반응들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

-박은빈 본인이 본 파격적인 장면은?
▲미란이나 양경감과의 호흡을 비롯한 여러 거친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분위기와 함께, 스스로 못 봤던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어 신선했다. 팬들이 그러한 장면을 보고 무섭다고 말해줬는데, 그러한 반응 또한 특별했다.
-설경구(최덕희 역)와의 대립 장면 비하인드는?
▲감사하게도 '직접 안 맞아도 된다'라고 해줬음에도 장면상 이유로 촬영을 했는데, 다행히도 (설경구) 선배와 합이 잘 맞아서 무난하게 촬영했다.
반대 입장에서도 그랬다. 선배를 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촬영을 하게 되니 마음이 좀 안 좋더라. 격한 대립들로 풀어지는 관계들이 다른 드라마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설경구·박병은 등 선배들과 첫 작품 호흡을 했는데, 이들과의 현장 케미는 어땠나?
▲우선 설경구 선배와는 정말 많은 소통을 했다. 생각보다 직접 마주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그리는 스토리라인이었기에, 내 촬영분을 말씀드리고 선배와 감정 톤을 맞췄다.
박병은 선배는 말씀이 크게 없으시면서도, 툭툭 개그를 던지시며 분위기를 풀어주시는 웃음 사냥꾼이셨다. 두 선배들의 '역할에 몰입하는' 모습과 기민한 현장 반응을 보면서 많이 배웠고,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이퍼나이프'의 결말 만족도는?
▲개인적으로는 잘 닫힌 해피엔딩이라 생각한다. 편집된 초반 오프닝 BGM으로 선정된 헨델의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와 함께, '덕희가 결국 세옥을 울리는 이야기'라는 작가님의 배경 설명을 들었던 나로서는 (최)덕희는 덕희대로 세옥을 울렸고, 세옥은 세옥대로 스승의 가르침을 한 차원 높게 달성함으로써 둘 다 목적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박은빈의 작품 선택 기준은?
▲짧은 시가 안에 희로애락을 겪어야 하는 것이기에, 직전과는 반대되는 성향들을 주로 택하곤 한다. 그래서 이번 '하이퍼나이프' 역시 '무인도의 디바' 서목하와는 다른 톤으로 정세옥을 표현한 것 같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라는 로그라인과 함께 본 적 없는 사제 관계를 그리는 묘한 지점들을 잘 담으면 세련된 매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옥만큼 박은빈이 집착하는 부분이 있나?
▲타협할 수 없는 불합리한 부분을 보고 논리적인 방향을 찾고, 효율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에 몰두하는 편이다. 다만 무턱대고 세옥처럼 의사소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웃음).
-30년 차 활동 소회는?
▲배우라는 직업을 잘 택한 것 같다. 인정받는 재미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많았던 꿈들을 캐릭터로서 경험해보고 단단해지는 것 같다. 또한 OTT를 통해 좀 더 넓은 세상에 콘텐츠를 선보이고, 이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감사하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