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통공사에 가면 증강현실(AR) 고글을 쓰고 허공을 휘저으며 가상의 부품을 분해·조립하는 독특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철도 가상환경기술(Trosar Cyberspace)을 활용한 철도차량 유지보수 교육의 한 장면이다. 교육생들은 가상의 부품을 분해·조립하며 철도 유지보수 기술을 익힌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모습은 디지털전환(DX) 시대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거대한 흐름이 개인의 삶과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DX는 이미 우리의 삶과 산업에 가까이 다가와 현실 속 변화를 조용히 이끌고 있다. DX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회와 산업의 변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적 변화를 이끄는 과정이다.
DX는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의 개발과 컴퓨터 보급으로 시작돼 그 속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됐다. 특히 오늘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 등장으로 더욱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체계로 자리 잡아 산업과 일상 모든 영역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철도산업은 탄소 저감을 위한 최적의 운송수단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고비용 구조와 기술 제약으로 새로운 혁신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철도산업에도 DX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가상의 부품을 다루는 AR 교육에서부터 디지털 블록을 활용한 차량 유지보수 시스템까지 철도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과 함께 재정의되고 있다.
미래 철도는 어떤 모습일까. 차량기지에 들어온 열차가 스스로 고장 부위를 진단하고, 유지보수 로봇이 이를 수리하며, 부품 공급 로봇이 새로운 부품을 제작해 즉시 교체하는 모습이 실현될 것이다. 부품은 디지털 블록이라는 작은 단위로 분해돼 재활용되고, 새로운 부품 제작에 다시 활용된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 개입 없이 자동으로 이뤄지며, 철도차량은 성능이 지속 향상되는 순환 구조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런 기술적 기반에서 디지털 블록은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핵심 자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디지털 블록은 분해·재조립이 자유로운 구조를 갖춰, 기존 유지보수 방식보다 더 높은 효율성을 제공한다. 제품 수명 연장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앞으로 디지털 블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개발·활용하느냐가 각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철도연이 개발 중인 Trosar 플랫폼은 이런 DX를 철도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플랫폼은 디지털 블록의 상호 호환성과 디지털 표준, 디지털 엔지니어링 기술을 연구하며, 철도차량 유지보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DX 과정에서의 비용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특히 낮은 비용으로 DX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Trosar 플랫폼은 철도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철도산업은 DX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DX가 요구하는 변화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정보의 축적과 통합, 데이터화된 세상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효율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디지털 블록과 같은 혁신 기술은 철도산업이 DX 시대를 선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DX는 더 이상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삶과 산업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철도연은 DX 시대에 철도산업이 요구하는 기술·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철도산업뿐 아니라 DX 중요성을 인식한 모든 산업에 새로운 방향과 영감을 제시할 것이다.
미래는 철저히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 DX가 철도산업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길 기대한다. 기술 발전을 넘어 우리 삶과 연결된 철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온정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jgohn@krr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