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체계 구축·추가 투자 약속
협약기간 이후에도 지속 협력
2022년 사업 참여한 60개사
매출 177억·투자유치 51억 성과
중견기업 참여비중 3% 그쳐
글로벌 진출 역량제고도 숙제
LG와 롯데, SK, GS 등 국내 대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스타트업 지원군으로 나선다. 스타트업과 함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후속 투자유치 기회까지 제공하며 상생협력을 이어간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4일 서울 강남구 씨스퀘어에서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 간 오픈이노베이션 공동수행 업무협약식을 개최했다. LG이노텍, 롯데건설, GS건설, 한국전력공사, 풀무원 등 31개 수요기업은 63개 협력 스타트업과 상생 협력체계 구축,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통한 추가투자 등을 약속했다. 보통 6개월 안팎인 협약기간 이후에도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지속 협업하기로 한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이 창업생태계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지금, 성과확산이라는 중요한 숙제가 남았다. 지속적인 지원체계 구축과 중견기업까지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오픈이노베이션 등장 20년, 폐쇄적 문화 허물고 기술교류 앞장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여년 전인 2003년이다. 헨리 체스브로 미국 UC버클리대 교수가 기업과 대학교에서 각각 경험한 기술혁신에 대한 인식 차에서 착안, 외부에서 기술과 아이디어를 조달하고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을 제시했다.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 각자 보유한 기술의 고도화에 몰두하던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여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이노베이션은 확산됐다. IBM은 이노베이션 잼이란 프로그램을 개설해 집단지성을 활용한 문제해결 또는 아이디어 습득 기회를 얻었고,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는 대학·정부 출연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초화학 분야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자연스레 한국에도 오픈이노베이션이 전해졌다. 의약·바이오, 통신, 제조업 대기업 등이 오픈이노베이션 조직을 갖추고 유망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과 접촉하는 형태로 시작했다. 이어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맡았다.
◇유망기술이 실증 기회 만나 성장 속도 '쭉'
중소벤처기업부는 2020년부터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을 실시하며 협업 분야 발굴을 도왔다. SK텔레콤, LG디스플레이, 네이버 등이 수요기업으로 참여해 스타트업과 새로운 기술·서비스 개발에 힘을 모았다. 정부는 기술검증(PoC), 시제품 제작 등을 위한 사업화 자금을 지원했다.
중기부는 2022년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에 참여한 60개사가 수요기업과 협업으로 매출 177억원, 고용 158명 증대, 투자유치 51억원, 업무협약·라이선스 계약 33건 체결 등의 성과를 낸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들어 성과는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영상분석 스타트업 딥핑소스는 지난 6월 롯데월드와 놀이기구 대기열 예측 솔루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으로 만난 두 회사는 폐쇄회로(CC)TV 기반 입장객 분석 솔루션 개발에 협업했는데, 상용화로 이어진 셈이다.
영상처리 스타트업 메이아이 역시 약 6개월간 롯데월드와 방문객 데이터 분석 솔루션 개발했다. 협약 기간 동안 3개 특허를 출원했다. 이어 'CES 2024' 혁신상 수상과 아기유니콘 기업(기업가치 300억원 이상 유망기업) 선정, 독일 가전박람회 IFA 참여 등으로 성장에 속도를 냈다. 딥핑소스는 지난달 BGF리테일과 미래형 편의점 구축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부산에 위치한 물티슈 제조기업 유승인네이처는 무림P&P와 플라스틱 무첨가 생분해 종이 포장재를 개발,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건설 부품기업 택한은 호반건설과 볼트 풀림이 없는 고강도 말뚝(PHC 파일) 이음공법을 개발해 건설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스타트업 보유 기술과 이를 시험해볼 대기업 자본, 실증 인프라가 더해진 것이 성과 창출 배경이다. 그리고 이번 업무협약 체결로 장기간 상생 협력을 지속, 후속성과를 이어나간다. 대기업은 연계된 CVC 자본으로 스타트업에게 자금조달 기회도 제공한다.
조경원 중기부 창업정책관은 “이번 협약식으로 수요기업과 스타트업 간 공동 협업과제 수행이 더욱 원활해지길 기대한다”면서 “중기부도 개방형 혁신의 실질적 성과 창출을 위해 정책적 지원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확대와 스타트업의 글로벌 협업 역량 보유는 숙제
물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중견기업의 저조한 참여다. 최근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오픈이노베이션에 참여한 중견기업 비중은 3%에 그쳤다. 대기업에 비해 인지도가 낮고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잡기조차 쉽지 않다.
창업생태계 종사자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중견기업이 혁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과 만나 현장 변화를 이끌면 시너지가 높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지원·홍보 확대와 중견기업 의사결정권자의 인식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염두에 둔 시장확대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포춘 글로벌 500 기업 대상 오픈이노베이션 설문조사'에서 PoC 협력을 높이기 위한 요소로 응답자의 57%가 글로벌 진출 역량 제고를 꼽았다.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지 시장조사가 다소 미흡하고 현지 언론 노출이 적어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보증, 보험, 합의서 등 행정 준비와 소통의 어려움도 글로벌 기업의 PoC 협업 애로사항으로 작용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경기 변동과 관계없이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대기업의 관심과 협업 의사가 높다”면서도 “우리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촉진을 위해서는 공동 기술실증 등 글로벌 대기업과 다양한 협력모델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