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입법영향분석제도 빨리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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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대한민국 헌법 제40조에 따르면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삼권분립이 되어있는 근대 민주화 국가 대부분은 이렇게 정하고 있으며 우리 대한민국 국회는 입법이라는 중차대한 국가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민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인간다운 삶을 구현하기 위한 입법이라는 책임감 있는 국가행위는 그 중요성을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국회에 가끔 가보면 수많은 민원인들이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입법을 호소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우리 사회 문제의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많은 세미나들이 열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흡사 대한민국에서 문제점을 다 모아 놓은 듯 아주 두꺼운 문제집 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입법 과정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국민들은 당연히 그 입법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알기가 어렵다. 나라 정치에 촌각을 아껴쓰는 국회의원들을 굳이 비판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들도 한계점까지 노력하고 고민할테니 그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나라 국회가 정치를 잘하느냐 질문을 던지기 전에 본연의 국가 임무인 입법을 잘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앞에서 언급한 각종 세미나들은 우리 사회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나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나름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세미나 축사로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정작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고민을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국회의원은 바쁜 일정에 쫓겨 세미나 축사로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라는 곳이 바쁜 일정 속에 돌아가는 곳이라 이해는 되지만 정작 입법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고민을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워낙 똑똑한 사람들이니 바로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고도화되고 전문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현명한 입법을 위해서는 신중하고 면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기술이 사회를 선도하는 정보통신기술(ICT)·과학기술시대에는 입법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할 때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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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국회입법조사처〉

지난 5월 말 제22대 대한민국 국회가 출범했고 국회가 더 나은 입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차원에서 입법영향분석제도에 대한 법안발의가 있었다. 이전 21대 국회에서도 발의했으나 끝내 논의되지 못했고 이번 국회에 다시 발의되었다. 입법영향분석제도(Legislative Impact Analysis·LIA)는 입법 전, 과정, 후에 법률로 발생할 영향을 증거에 기반해 과학적, 전문적, 체계적으로 예측하고 분석해 더 좋은 법률을 만들기 위한 절차로 이미 많은 국가에서 도입 및 시행 중인 제도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는 예측통계나 반응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나 증거들이 타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정량화가 쉬워서 인터넷이나 디지털경제 등 분야에선 더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제도라 생각된다. 2007년 인터넷상 악성댓글 출현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인터넷실명제가 법으로 시행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공익의 효과는 미비하고 개인 표현의 자유만 침해할 뿐이라는 위헌판결(헌재 2012.8.13. 2010헌마47)을 기억한다. 판결문엔 없지만 그 법의 시행으로 우리나라 동영상 사업체들은 망하고 유튜브가 급성장하게 된다. 만일 그때 입법영향분석제도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또 지난 몇 년간 국회를 중심으로 플랫폼에 대한 규제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정작 왜 규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객관적 증거의 논증보다는 가설에 기반한 명분이나 검증과 분석이 없는 비과학적 입법 논의도 많이 보게 된다. 이 때문에 때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감정에 따른 입법행위가 아닌지에 대한 오해와 의문도 들게 한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전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발전에 따라 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연동돼 변화되고 있으며 국제관계도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변수들을 고려한 신중한 입법이 필요해졌다. 입법영향분석제도는 과학적, 정책적, 국내외 이해관계적 고려 등으로 더 좋은 입법을 하기 위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입법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절차임이 분명하다.

또 우리 헌법은 입법 위헌 여부를 판단할 때 입법목적 정당성 외에 수단의 적합성, 법익 균형, 최소 침해 원칙에 부합했는지를 본다. 앞서 입법영향분석을 통해 규제의 수단에 있어 방법이 적절한지와 침해되는 부분들이 얻고자 하는 이익보다 큰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그 법률이 헌법에 부합한 법률이 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기도 하다.

정부 부처가 국회의원에게 제안하는 소위 청부입법의 경우 관계부처 담당자와 의원실 간 합의로 소관 상임위에 회부되어 치열한 검증과 논증 절차없이 회기말기에 급하게 다수결로 통과돼 버리는 법률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는가. 이 과정에서 그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우리 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을 과연 얼마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심도 깊이 찾아보려 애썼을까를 생각하면 대의민주주의제도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 때도 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입법영향분석제도가 입법권의 제한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실제 그 이유로 처음 제안됐던 19대 국회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이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더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한 입법영향분석제도가 입법기관 권한에 제한이나 불편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거절되고 제도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살펴보고 가야 후회할 일이 적어진다. 유럽은 중요한 법안의 경우 수년 동안 많이 토론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법안이 최종적으로 완결된 형태로 제안된다. 토론과정에서 법이 만들어지고 수렴된 의견으로 법안이 완성되기 때문에 거의 이견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빨리빨리 문화라 하지만 적어도 입법에서 만큼은 조금 느리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남발(제21대 국회에서 2만5027건 발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적은 줄어들고 국회의 현명한 입법 활동의 기대감이 높아질 것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를 취득한 후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로 지냈다. 2018년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