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페르소나(Persona)는 본래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연극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이 갖는 성격이 실제 배우의 그것과 같을 확률은 높지 않지만 배우는 언제나 관객이 그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평가받기 때문에 페르소나가 곧 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은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잘 부합하는 페르소나를 만들고, 그것을 성장시키면서 대중의 인기를 모은다. 요즘은 '부캐'라 하여 대중에게 이미 잘 알려진 캐릭터가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대중은 그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기에 적절한 페르소나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이 여러 캐릭터를 갖는 다면적 정체성은 더이상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능력의 표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투구와 타격을 모두 잘하는 야구선수가 스타가 되고, 연기와 공부를 모두 잘한 연기자가 주목을 받는 시대다. 마찬가지로, 계산만 잘하던 인공지능(AI)이 인간과 대화도 잘하게 된 것이 요즘 뜨고 있는 생성형 AI다. 이제 생성형 AI가 온라인게임속 비플레이어캐릭터(NPC)와 결합해서 지능형NPC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더 이상 개성없는 단역이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주연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경험이나 마케팅 분야에서도 페르소나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만한 인구집단 안에는 다양한 사용자가 있기 마련인데 그들을 가상의 인물로 유형화하곤 한다. 이 때에도 페르소나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잠재 소비층을 구체적으로 유형화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인터뷰, 설문조사, 웹사이트 로그분석 등을 활용하여 소비 동기, 소비자의 연령, 교육수준 등 인구통계학적 속성, 소비자의 가치관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회과학, 통계 기법이 활용되며 페르소나를 잘 도출하면 매출이나 순이익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AI 시대에 우리는 어떤 페르소나를 가져야 할까? 이미 많은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갖는 'N잡러'가 되었다. N잡러는 다양한 산업에 속하는 여러 직업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각 근무처가 기대하는 이상적 타입의 노동자로서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N잡러에게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찾는게 힘들어지고 있고, 일부 직업은 로봇이나 AI에 언제 빼앗기게 될지 모르는 경쟁환경에 놓여 있기도 하다. N잡러가 가져야 하는 N개의 페르소나가 서로 상충되거나 개인의 기질, 성격에 맞지 않다면 아마도 불편함을 주는 페르소나는 폐기해야할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캐'로 키워온 페르소나가 큰 반향을 일으켜 본업 또는 '주캐'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겠다.

평생을 경제관료로 살았던 분이 사교댄스를 배워 댄서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로 호평을 받았던 적이 있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품인줄 알았던 배우가 온라인 게임에서는 공격적 플레이어로 반전매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AI와 협업하고 경쟁하는 시대에는 N개의 페르소나를 갖는 것이 결코 부끄럽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다. 챗GPT가 만물박사처럼 어떤 분야의 질문이든 척척 답변해 내듯이, 우리도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힘찬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페르소나가 아닌 다른 이가 원하는 것을 취하게 된다면, 가면 뒤에 숨어서 눈물을 감추며 어색한 연기를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더더욱 진정한 나를 찾는 탐색과 모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