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코스닥 입성 길…기업 가치 산정 놓고 줄줄이 연기

코스닥 상장 장기 대기 명단이 늘어나고 있다. '파두 사태' 이후 엄격해진 기술특례평가에 거래소 심사 승인까지 6개월을 훌쩍 넘긴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가치 산정에 대한 시각 차이가 심사 지연의 주된 요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피노바이오는 자진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지난해 5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심을 청구한 지 9개월만이다. 현재 거래소 상장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기업 가운데 최장기 예비심사 사례다. 피노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전문 바이오벤처다.

피노바이오의 자진 상장 철회 결정은 거래소의 깐깐해진 기술특례상장 심사가 주된 요인이다. 파두 사태 이후 불거진 공모가 부풀리기 논란으로 거래소에서는 미래 추정이익에 대해 신중한 시각을 지속하고 있다. 피노바이오 관계자는 “상장 심사가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 산정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어왔다”면서 “거래소 심사가 1년 가까이 지연되면서 기술성 평가 이후 진척된 당사의 R&D 성과를 적정 밸류로 반영하기 어려웠다”고 상장 철회 배경을 밝혔다.

피노바이오 뿐만 아니다. 현재 6개월 이상 상장예비심사를 대기 중인 기업 대부분은 기업가치 산정을 두고 이견이 크다. 사업모델 특례로 코스닥 입성을 추진하는 자비스앤빌런즈도 6개월 넘게 상장일정이 밀리고 있다. 회사가 운영하는 세무 플랫폼 삼쩜삼이 여전히 세무사회 등 업역 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자비스앤빌런즈가 인터넷은행 설립 출사표까지 던지면서 기업가치 산정에 대한 이견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비교적 손쉬운 상장 경로인 스팩(SPAC)을 통한 우회상장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를 운영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은 지난해 7월 스팩 소멸방식 합병을 통한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지난해 말 합병기일을 연기핶던 이브로드캐스팅은 설 명절 직전 재차 합병 일정을 미뤘다. 증권신고서 제출일도 오는 4월로 연기됐다. 실제 상장은 빨라야 7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예비상장심사 청구 1년만이다.

상장 이후 공모가 산정에 대한 시각차로 인해 기업의 자금조달 일정이 통째로 연기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벤처투자시장에서 고평가를 받은 기업일 수록 공모가에 대한 시각차는 더욱 큰 만큼 상장도 더욱 더뎌지고 있다.

결국 예비심사 청구 당시 제시한 기업가치와 실적의 괴리 여부를 보다 줄이는 방향으로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는 “대략의 실적이 집계되는 현 시점을 기준으로 사업보고서에 등에 담길 실적을 반영해 기업가치를 재조정하라는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입장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분위기다. 신임 이사장 선임 안팎으로 그간 밀린 심사를 하루 빨리 처리하는 게 시급하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거래소는 14일 주주총회에서 정은보 전 금감원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통상 사업보고서가 작성되는 현 시점에서는 심사가 더욱 길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서 “많은 기업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상장 일정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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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